무상(無償)의 도전, 지역의 자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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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은 무상(無償)의 행위’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등반가 리오넬 테레이(Lionel Terray)가 남긴 알피니즘에 대한 금언(金言)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며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수직의 거봉을 오르는 것은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몸짓이라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 순수성이야말로 등반의 위대함이자 매력이다. 얻는 것이 있다면 무한 자유와 절대 고독, 불확실성을 넘어선 성취감뿐이다.
테레이는 말한다. “알피니스트는 명예를 기대하지 않으며 관중의 박수갈채로 흥분하지 않는다. 자신의 파트너 외에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고독을 느끼고, 정적이 흐르는 산에서 자신과 싸우며 곤란을 이겨 내고, 자신 속에 잠재된 힘과 용기를 느끼는 것으로 희열을 맛본다.”(‘무상의 정복자’, 김영도 번역)
히말라야에는 높이 8000m 이상의 거봉이 14개 있다. 이들을 하늘의 별에 빗대어 ‘14좌(座)’라고 부른다. 이들 14좌를 인류 최초로 모두 오른 산악인은 라인홀트 매스너(Reinhold Messner)다. 그는 나아가 산소통에 의지하지 않고 제 호흡만으로 이들 봉우리를 완등해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영역마저 무너뜨렸다. 하지만 메스너는 그의 14좌 완등을 기리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메달을 수여하려 하자 거부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등반에서는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
광주·전남에도 초인적 의지로 산악 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산악인들이 있다. 그 선봉에 있는 이는 지난달 7일 파키스탄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가셔브룸Ⅰ(8068m) 정상에 우뚝 선 김홍빈(55·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 회장·콜핑 홍보이사) 대장이다. 그는 이번 등정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13좌의 정상을 밟았다. 마지막 남은 브로드피크(8047m)만 오르면 장애인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14좌 완등을 달성하게 된다.
산악사 새로 쓴 김홍빈·미곤
열 손가락이 없는 조막손으로 극한의 도전을 이어 가고 있는 그의 행보는 극적이고 경이롭다. 촉망받는 산악인이었던 그는 지난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등반 중 사고로 양손의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 이후 옷을 입는 것은 물론 용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동안 실의와 좌절에 빠져 방황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등반이라는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에게 다시 내밀었다. 첫 목표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이었다. 1997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남극의 빈슨 매시프(4897m)까지 일곱 개 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장애 산악인 최초의 쾌거로, 절망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장은 동시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도 도전했다. 2006년 파키스탄 가셔브룸Ⅱ(8035m) 등정을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13개 봉우리를 올랐다.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이처럼 놀라운 도전과 성취를 이어 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담금질이었다. 그는 장애인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와 사이클 선수로도 활약하면서 많은 메달을 따는 등 평소 치열한 훈련으로 고산 등반에 필요한 체력을 다졌다.
그런가 하면 김미곤(47·한국도로공사 산악팀) 대장은 지난해 7월 9일 ‘산중의 왕’ 낭가파르밧(8125m) 정상에 올라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1994년 서강정보대(현 서영대) 산악회에 들어가면서 등산에 입문한 그는 1998년 알프스 3대 북벽에 이어 마나슬루(8163m) 원정에 나서면서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었다. 2000년 초오유(8201m) 정상을 오르며 히말라야 14좌 레이스에 시동을 건 김 대장은 18년 만에 완등을 이뤄 냈다. 그 과정에서 2007년에는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와 로체(8516m)를 연속 등정해 ‘철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극한서 꽃피운 희망과 용기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죽음의 지대’에서 거둔 그들의 성과가 값진 것은 국토의 70%가 산지이면서도 높이 2000m가 넘는 봉우리 하나 없는 자연환경에서 끊임없는 자기 단련을 통해 이뤄 낸 것이기 때문이다. 척박한 것은 자연환경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이해 부족도 걸림돌이었다. 해외 원정에 필요한 경비 마련의 어려움 또한 끝없이 이들의 발목을 잡곤 했다. 이런 탓에 후원을 받기에 유리한 수도권 등지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라는 선후배들의 권유에도 이들은 끝까지 지역을 지키며 ‘슈퍼 알피니즘’을 꽃피웠다.
두 사람은 그동안 수십 차례의 원정대를 각각 이끌며 등반대장과 원정대장을 도맡아 왔다. 이들의 이름 뒤에 ‘대장’이라는 칭호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이유다. 이들은 또한 자일(Seil) 파트너로서 가셔브룸Ⅱ와 에베레스트, K2(8611m) 등의 정상을 함께 밟으며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 왔다.
‘무상의 행위’라지만 이들이 이룬 성취는 올림픽 메달이나 세계 대회 입상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이들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홍빈 대장은 마지막 남은 브로드피크 등반을 내년에 북한 등지의 장애인들과 ‘평화의 원정’으로 꾸리는 꿈을 꾸고 있다. 14좌 완등 이후에도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를 중심으로 장애인과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산악 활동을 계속할 작정이다. 김미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아직까지 유일하게 겨울철 등정이 이뤄지지 않은 K2(8611m) 동계 세계 초등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에선 절망을 딛고 불굴의 도전을 이어 온 김홍빈 대장의 ‘인간 승리’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어 미래 세대의 귀감으로 삼자는 제안도 나온다. 이들은 말한다. “산을 정복하려는 것도 영웅이 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도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탐험은 인류 문화의 원동력이었다. 지역 산악인들의 도전과 성취 역시 지역 사회가 이어 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의 담대한 발걸음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히말라야에는 높이 8000m 이상의 거봉이 14개 있다. 이들을 하늘의 별에 빗대어 ‘14좌(座)’라고 부른다. 이들 14좌를 인류 최초로 모두 오른 산악인은 라인홀트 매스너(Reinhold Messner)다. 그는 나아가 산소통에 의지하지 않고 제 호흡만으로 이들 봉우리를 완등해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영역마저 무너뜨렸다. 하지만 메스너는 그의 14좌 완등을 기리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메달을 수여하려 하자 거부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등반에서는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
산악사 새로 쓴 김홍빈·미곤
열 손가락이 없는 조막손으로 극한의 도전을 이어 가고 있는 그의 행보는 극적이고 경이롭다. 촉망받는 산악인이었던 그는 지난 1991년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등반 중 사고로 양손의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 이후 옷을 입는 것은 물론 용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동안 실의와 좌절에 빠져 방황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등반이라는 구원의 손길을 스스로에게 다시 내밀었다. 첫 목표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이었다. 1997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남극의 빈슨 매시프(4897m)까지 일곱 개 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장애 산악인 최초의 쾌거로, 절망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대장은 동시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도 도전했다. 2006년 파키스탄 가셔브룸Ⅱ(8035m) 등정을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13개 봉우리를 올랐다.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이처럼 놀라운 도전과 성취를 이어 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담금질이었다. 그는 장애인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와 사이클 선수로도 활약하면서 많은 메달을 따는 등 평소 치열한 훈련으로 고산 등반에 필요한 체력을 다졌다.
그런가 하면 김미곤(47·한국도로공사 산악팀) 대장은 지난해 7월 9일 ‘산중의 왕’ 낭가파르밧(8125m) 정상에 올라 광주·전남학생산악연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1994년 서강정보대(현 서영대) 산악회에 들어가면서 등산에 입문한 그는 1998년 알프스 3대 북벽에 이어 마나슬루(8163m) 원정에 나서면서 히말라야와 인연을 맺었다. 2000년 초오유(8201m) 정상을 오르며 히말라야 14좌 레이스에 시동을 건 김 대장은 18년 만에 완등을 이뤄 냈다. 그 과정에서 2007년에는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와 로체(8516m)를 연속 등정해 ‘철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극한서 꽃피운 희망과 용기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죽음의 지대’에서 거둔 그들의 성과가 값진 것은 국토의 70%가 산지이면서도 높이 2000m가 넘는 봉우리 하나 없는 자연환경에서 끊임없는 자기 단련을 통해 이뤄 낸 것이기 때문이다. 척박한 것은 자연환경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이해 부족도 걸림돌이었다. 해외 원정에 필요한 경비 마련의 어려움 또한 끝없이 이들의 발목을 잡곤 했다. 이런 탓에 후원을 받기에 유리한 수도권 등지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라는 선후배들의 권유에도 이들은 끝까지 지역을 지키며 ‘슈퍼 알피니즘’을 꽃피웠다.
두 사람은 그동안 수십 차례의 원정대를 각각 이끌며 등반대장과 원정대장을 도맡아 왔다. 이들의 이름 뒤에 ‘대장’이라는 칭호가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는 이유다. 이들은 또한 자일(Seil) 파트너로서 가셔브룸Ⅱ와 에베레스트, K2(8611m) 등의 정상을 함께 밟으며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 왔다.
‘무상의 행위’라지만 이들이 이룬 성취는 올림픽 메달이나 세계 대회 입상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이들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홍빈 대장은 마지막 남은 브로드피크 등반을 내년에 북한 등지의 장애인들과 ‘평화의 원정’으로 꾸리는 꿈을 꾸고 있다. 14좌 완등 이후에도 사단법인 ‘김홍빈과 희망 만들기’를 중심으로 장애인과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산악 활동을 계속할 작정이다. 김미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아직까지 유일하게 겨울철 등정이 이뤄지지 않은 K2(8611m) 동계 세계 초등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에선 절망을 딛고 불굴의 도전을 이어 온 김홍빈 대장의 ‘인간 승리’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어 미래 세대의 귀감으로 삼자는 제안도 나온다. 이들은 말한다. “산을 정복하려는 것도 영웅이 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도전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탐험은 인류 문화의 원동력이었다. 지역 산악인들의 도전과 성취 역시 지역 사회가 이어 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의 담대한 발걸음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