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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학교 가는 아이들·감자 캐는 농부 ‘작품’이 되다
[특집 미술관·박물관으로 떠나는 문화 바캉스 - 광주·전남 우리동네 미술관을 찾아서 (下)]
함평 잠월·담양 대담 등 사립미술관 청소년·주민 대상 예술프로그램 진행
평범한 일상의 모습 작품으로 승화...그 지역만의 색깔로 문화향기 발산
2019년 08월 13일(화) 04:50
고흥군 거금도 왼쪽편에 자리한 연홍도는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예술의 섬이다. 섬 곳곳에 미술작품들이 설치돼 있어 자연과 함께 예술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다.
담양 남촌 미술관






화가가 꿈이었던 60대 여성은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일상이자 삶인 농부의 모습을 소박하게 화폭에 담은 그의 그림은 눈밝은 지역미술관 관장의 눈에 띄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40대 한 조각가는 자신의 고향에 작은 미술관을 지었다. 작가 특유의 ‘못난이’ 조각상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유머러스하게 담겨있다. 전남 도내 곳곳에 자리한 미술관들은 문화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하나되는 동네 미술관=전남 도내 사립 미술관들은 각기 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 함평 잠월미술관과 담양 대담미술관·남촌미술관, 순천 모긴미술관, 고흥 남포미술관 등 사립 미술관들은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기획전과 청소년·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 덕분이다.

고흥 거금도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연홍도는 섬 전체가 ‘지붕없는 미술관’이다. 선호남 관장이 문을 닫은 연홍분교를 활용해 ‘섬IN섬아트센터 연홍미술관’을 2006년 11월에 개관했다.

담양 보임쉔 공예미술관(관장 김현정)은 지난 2016년 4월 담양군 대전면에 문을 열었다. 목칠공예 작가와 목공예 작가로 활동하는 광주대 조형디자인학부 정건용 교수와 김현정 부부가 세웠다. ‘보임쉔’(Baumchen)은 독일어로 ‘작은 나무’를 뜻한다. 지역공예가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예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큰 나무’로 성장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영산강변에 있는 ‘못난이 미술관’은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미모 지상주의’ 한국사회에서 못난이를 표방하니 더욱 그러하다. 김판삼 조각가가 자신의 고향에 지난 2016년 10월 개관한 작은 미술관이다. 배불뚝이 ‘못난이’ 조각상들은 해학적이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해남지역 미술관 활동이 돋보인다. 해남종합병원 설립자인 행촌 김제현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재)행촌 문화재단은 ‘행촌 미술관’과 ‘수윤 아트 스페이스-거인의 정원’, 창작공간(창작 레지던시) ‘이마도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해남종합병원 동관 1층에 개관한 행촌 미술관은 예술작품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민들은 물론 병원 환자들에게 미술문화를 향유하고 심리적 치유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해남읍 학동리에 자리한 ‘수윤 아트 스페이스’(해남읍 읍학동길 78-6)는 옛 골프연습장 클럽하우스를 재생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해남지역 청소년들의 문화예술 체험장이면서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기도 하다.

“지역에 있는 미술관은 지역적 특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지역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지역에서 필요한 것, 혹은 그 지역에서 지향해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지역 미술관이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미 행촌문화재단 대표(행촌미술관 관장)은 해남이 갖고 있는 장점으로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단점으로는 줄어드는 인구 문제를 꼽았다. 작가들이 영감을 받고,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모티브가 해남의 자연과 문화 속에 무수하게 내포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촌문화재단은 작가들이 해남에서 머물며 지역 문화적 자산들을 현대적인 시각, 혹은 그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은 연중 10~12회 행촌미술관과 대흥사 등 해남 전역에서 전시된다.

◇생생한 농사모습 그리는 ‘농부 화가’=‘농부화가’ 김순복(62)씨 역시 행촌미술관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자신의 삶이고, 일상생활인 농사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있다. 2015년 막내딸이 선물해준 72색 색연필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관장은 ‘한국에서 손으로 짓는 마지막 농부세대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업을 주목했다.

이 대표는 수윤 아트스페이스에서 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고라니와 아이들의 호박학교’ 등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 때문에 해남을 떠나는 세태를 바꿔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여기는 미술관이니까 그림을 배우겠지 하고 옵니다. 저희는 그림 그리는 것은 안 가르쳐요. 시쓰고, 소설 쓰라고 국어교육 하는 것 아니잖아요. 그런 것처럼 미술관 예술교육이라는 것은 한 아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예술이 어떤 자양분을 줄 수 있는가?’가 더 큰 목적이 돼야 합니다.”

수윤 아트스페이스를 찾은 지역 청소년들은 농부, 목수들과 씨를 뿌리고, 가구를 만들고, ‘트리 하우스’ 등을 짓는다. 그리고 수확 철에는 함께 감자와 상추, 고추 등 농산물을 수확해 그걸로 요리를 한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몸을 움직이는 교육, 자연에서 같이 노는 교육이다. 또한 미술에 관심을 가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드로잉 클럽’과 ‘우리 동네 수묵클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녀회장과 세무공무원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풀어낸다.

지역 사립미술관은 공공성을 가지고 여러 프로그램을 추진하지만 많은 애로를 겪기도 한다.

“(지역 사립미술관이) 이 시설과 전문성으로 국·공립이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하려면 예산을 조금 주고 ‘잘해보세요!’가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사립 미술관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지원하고, 어떤 행정적인 정책이 필요한지 의논을 해봐야 합니다.”

이승미 대표는 지역문화 발전과 지역민의 ‘문화복지’를 위해 지역에 더 많은 문화공간이 들어서길 바란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농촌 어르신들이 미술관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도 보고, 자기 그림도 걸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화복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관은) 오히려 시내 한가운데에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희처럼 외진 곳에 작고, 소박하게 운영하는 미술관들이 더 많아져야 됩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