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 설치된 여성상은 수난을 당하지만 덴마크 코펜하겐에 설치된 인어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성희롱 피해를 입지 않는다. <arte 제공>

작금에 회자되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브라’다. 2018년 “여성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는 구호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인 여성단체, ‘탈브라’ 논의, 여성 연예인들의 ‘노브라’ 논란 등이 화젯거리였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믿는 건 내 가슴뿐’이라며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인간의 몸 중에서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 건 정말 가슴이다. 상처를 받을지언정 누구를 해치지 않는다. 그 가슴이 가장 편한 상태로 내버려 두자”고 언급한다.

여성의 가슴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모성과 풍요의 물신’, ‘당당한 자기표현의 수단’ 등…. ‘유방’은 여성의 신체로 인지된다. 사실 ‘가슴은 곧 여성’이라는 이미지, 다시 말해 ‘여성의 가슴은 성(性)적’이라는 명제는 오랫동안 당연시돼 왔다. 그러나 이 전제에 대해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노브라 파문’의 문화사적 의미를 포함해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가슴 문화사를 다룬 책이 나왔다. 다케다 마사야 홋카이도대 대학원 교수가 펴낸 ‘성스러운 유방사’는 한마디로 ‘단 한 권의 가슴 박물지’다.

책이 기획된 것은 지난 2008년부터다. ‘유방문화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각 분야 연구자들이 고대문학과 예술,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잡지, 포스터, 공공미술 등 다양한 문화 매체를 살폈다. 이들이 직접 여러 나라를 답사해 얻은 결론은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가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장소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이 사회 상규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일반화된 것은 양장 차림의 일반화 시기와 맞물린다. 일본의 경우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통해 보급받은 ‘라라물자’를 시작으로 서양식 복식이 대중화된다. ‘단정한 모습’을 연출한다는 ‘공익적 목적’은 도입 초기 꽤나 비쌌던 모양이다.

저자는 당시까지만 해도 브래지어와 코르셋은 ‘성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건강과 위생, 사회 상규에 부합하는 ‘개화’의 상징이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과는 다르게 백화점 속옷 상점에 가는 남편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위해 지출하는 ‘신식’ 인사로서 자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브래지어로 젖과 젖꼭지를 가리는 게 ‘문명화’라는 인식은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에서 보편화됐다. 물론 ‘인어공주’가 처음부터 비키니를 입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는 자유로웠던 인어의 가슴은 육지로 나오면서 ‘인간’의 규율에 맞춰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책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의 ‘가슴 문화’에 집중한다. 가슴 문화를 개괄하는 총론과 아울러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 ‘가슴 이야기’들, 각국의 가슴 문화를 보여주는 답사기 ‘세계의 젖가슴 산책’, 가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하는 ‘젖가슴 공부’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젖가슴, 유방, 젖, 가슴, 젖퉁이, 젖무덤 ……. 여러분이 손에 든 이 책은 때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인체의 특정 부위에 관한 에세이를 엮은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문화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유방론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이 마중물이 된다면 필자 모두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