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워라벨 시대, 문화관광을 키우자 <9>독일 드레스덴
300년전 바로크 양식과 젊은 아트타운이 공존하는 곳
인구 50만…2차대전 아픔 겪은 도시
노이마르크 광장 프라우엔 교회
96m 높이 거대한 돔 인상적
레지덴츠 궁전 벽화 ‘군주의 행렬’
전쟁 폭격에도 유일하게 살아 남아
성벽 위 공간 ‘브륄의 테라스’
2019년 07월 29일(월) 04:50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 구시가지 전경. 엘베강을 경계로 바로크양식의 건축물과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이 살아숨쉬는 노이슈타트 거리가 공존한다. <드레스덴 관광청 제공ⓒ Sylvio Dittrich>
노이마르크 광장에 자리한 프라우엔 교회.




레지덴츠 궁전의 담장에 그려진 ‘군주의 행렬’




레지덴츠 궁전의 담장에 그려진 ‘군주의 행렬’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빠져 나오면 모던한 디자인과 세련된 감각의 빌딩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 오는 건 깔끔한 외관의 호텔들과 레스토랑, 쇼핑몰이다.

‘드레스덴’이라는 도시 이름에서 연상되는 고즈넉한 정취를 기대한 이들에겐 다소 당황스러운 풍경이다. 10분 쯤 걷다 보면 시나브로 도시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한다. 현대식 건물들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교회와 고풍스런 정취가 묻어나는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이마르크(Neumarkt) 광장에 들어선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30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듯 하다. 바로크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거대한 형상의 프라우엔 교회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노이마르크 광장 한복판에 프라우엔 교회는 1726년~1743년까지 무려 27년에 걸쳐 독일 바로크 양식 건축의 대가 게오르게 베어(George Bahr)가 설계한 루터파의 개신교회다. 교회 앞에 서 있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1736년 유명한 파이프 오르간 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은 교회의 오르간을 제작했는데 그해 12월 1일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이 오르간으로 연주를 해 화제를 모았다.

관광객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건 교회의 상징인 96m 높이의 돔. 기술적인 면에서 로마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 젤로의 돔과 견줄만 할 정도로 정교하다. 1760년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 군대가 퍼부은 100여 개의 포탄에도 살아 남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었다.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한 교회는 전쟁후 시민들의 염원으로 부활하는 기적을 낳았다. 당시 시민들이 프라우엔 교회의 잔해들을 모아 번호를 매겨 보관했다고 하니 재건축에 대한 꿈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독일 태생의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Gunter Blobel)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 어린 시절 프라우엔 교회의 모습을 기억한 후 1994년 재건프로젝트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여러 단체와 시민들이 뜻을 모아 지난 2005년 옛 모습 그대로 세상에 나왔다.

이처럼 작센(Saxony) 주의 주도이자 인구 50만 여 명의 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겪은 도시다. 프라우엔을 비롯해 츠빙거(Zwinger) 궁전 등 도시의 랜드마크들이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붕괴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옛 왕궁극장인 잼퍼오퍼(Semperoper)도 그런 케이스다. 1841년 설계자인 고트프리트 잼퍼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인 극장은 연합군의 폭격에 무너진 후 오랫동안 방치됐다.

전쟁이 끝난 후 잼퍼의 옛 설계도를 찾지 못한 드렌스덴 시는 다른 건축가에게 맡겨 재건축을 시도했지만 원형 복원을 바랬던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얼마후 잼퍼가 거주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당시 설계도가 발견되면서 옛 모습 그대로 재건될 수 있었다. 그로 부터 수십 여년이 흐른 지금, 잼퍼오퍼는 드레스덴은 물론 독일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노이마르크 광장을 지나면 드레스덴의 상징인 레지덴츠 궁전이 반갑게 맞는다. 아우구스트 왕이 거주했던 이 곳의 내부 인테리어와 집기류를 보면 당시 화려했던 궁정생활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레지덴츠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궁전의 담장에 그려진 벽화 ‘군주의 행렬’(Furstenzug)이다. 드레스덴의 ‘보물’들을 파괴시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유일하게 살아 남은 곳으로 더 유명하다.

이 곳에는 1876년 작센 공국(Sachsen)을 다스린 영주의 집안인 베틴(Wettin) 가문의 역대 군주 35명과 과학자 등 인물 59명이 연대기 식으로 그려져 있다. 원래는 그림으로 그렸지만 손상이 심해지자 1907년 마이센 도자기 회사가 2만4000개의 타일을 붙여 모자이크로 만들었다고 한다. ‘군주의 행렬’이 그려진 담장쪽은 문화해설사가 이끄는 단체 여행객과 당시 군주들 처럼 걷거나 인증샷을 찍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본격적인 투어는 드레스덴의 꽃이라고 불리는 츠빙거궁전으로 부터 시작된다. 1722년 아우구스트 왕이 궁정행사와 축제장으로 만든 곳으로 드레스덴 관광객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명소다.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예술적으로’ 조성된 잔디와 분수대, 그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일상이 한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정원을 마주하고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도자기 박물관 등의 미술관들이 들어서 있어 예술관광을 즐기는 애호가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츠빙거 궁전과 잼버오퍼극장을 한바퀴 둘러 본 후 엘베강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그 유명한 ‘브륄의 테라스’와 만난다. 성벽 위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테라스가 된 공간으로 잠시 벤치에 앉아 감상하는 옛 건축물과 엘베강 풍경은 하루의 피곤함을 날려 버린다. 생전 이 곳을 자주 찾은 독일의 문호 괴테가 ‘유럽의 테라스’로 극찬할 정도로 아름답다.

구 시가지가 전통적인 드레스덴의 관광지라면 노이슈타트로 대변되는 예술의 거리는 배낭족과 20~30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핫플레이스다. 사실 드레스덴은 엘베강을 사이로 바로크양식의 고풍스런 분위기와 젊은 예술가들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아트타운’등 두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노이슈타트는 한국의 홍대 골목이나 이태원쯤 되는 곳이다. 10년 전 부터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관람등 문화관광을 즐기는 테마여행객이 늘어나자 드레스덴시와 관광청이 기획한 예술특구다. 독일관광청도 드레스덴 여행을 계획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노이슈타트 상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1900개의 빌딩이 들어서 있는 거리와 골목에는 예술가들의 끼와 감성이 녹아 있는 독특한 그래피티와 조형물이 즐비하다.

크리스티안 슈트리플러(Christian Striefler) 작센주 궁전·성·정원 관리공사(Schloesserland Sachsen) 대표는 “드레스덴의 매력적인 성(城)과 궁전, 정원은 고풍스런 건축물과 함께 관광객들이 꾸준히 선호하는 매력적인 볼거리”라면서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양한 홍보 영상과 콘텐츠 기획은 물론 ‘성의 나라 작센’이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브랜딩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