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때 일상용품과 함께 빼놓지 않고 챙기는 건 무엇인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들을 ‘음악’을 고르지 않을까. 기차를 탈 때, 낯선 거리를 걸을 때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듣다보면 행복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또 하나, 책 한 두권을 가방에 넣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느긋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왠지 여행의 동반자로서 책만한 것은 없는 듯하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소설가 강병융이 펴낸 ‘도시를 걷는 문장들’은 여행지에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다. 여러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그와 함께 했던 책, 함께 걸었던 문장들이 있었고 유럽 20개국 22개 도시 이야기와 그곳에서 만난 22권의 책 이야기를 담아 펴냈다.

‘일상스러운 여행’을 즐기는 그는 일상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여행지에서도 기대 없이 즐기는 게 모토다. 피곤하면 늦잠을 자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를 보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일상의 삶속에서 ‘틈나는 대로 읽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우울한 나날이 계속될 때 누군가의 추천으로 마스다 미리의 ‘뭉클하면 안되나요?’를 접한 그는 책을 들고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로 떠난다. 국내에도 팬이 많은 마스다 미리는 편의점에서 문을 잡아주는 중학생에게, 노래를 못부르는 사람에게 ‘뭉클’해하는 ‘초긍정인’이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으며 마스다 미리의 ‘뭉클함’에 빠져든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 마스다 미리처럼 자주 ‘뭉클함’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카프카의 ‘변신’을 들고 찾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 에곤 실레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관람하다 휴식을 취하며 미술관 계단에 쭈그려 앉아 어두운 방구석에 누워있을 ‘그레고리 잠자’를 상상하고, 영화 ‘비포 선라이즈’ 촬영장이었던 프라타 놀이공원에서 다뉴브강을 보면서 벌레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읽는 건 묘하게 낭만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밖에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트리에스테, 김이정의 ‘유령의 시간들’과 함께 한 체코 프라하, 윤고은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의 구절을 마음에 새긴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 영화로도 만들어진 앤디 위어의 ‘마션’을 갖고 떠난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데이비드 에버쇼프의 ‘대니쉬 걸’을, 라트비아 리가에서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니콜라이 고골의 ‘코’를 읽는 그의 여행길에 동참하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의 여행과 책읽기를 따라 가다보면 이미 읽었던 책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여행지’에서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또 새롭게 알게 된 책을 가방에 넣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다음 여행길, 내 여행의 동반자는 무슨 책일까. <한겨레출판·1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