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고 말할 때 그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 너무나 익숙해서 아무 의심 없이 사용하는 이 표현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가 종종 있다. 그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다. 이 표현은 말을 하고 있는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을 뜻한다. 그런데 말 속에 숨겨진 다른 의도를 볼 때 친숙함은 ‘낯설음’으로 변한다.

예를 들면 골 깊은 갈등이나 대립을 적당하게 퉁치고 넘어가려는 계산, 서둘러 불편한 상황을 봉합하려고 할 때 그렇다. 또는 같은 집단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경계를 긋는 유용한 수단으로 작용할 때 그렇다. 그래서 우리라는 집단의 위험은 곧 ‘나’의 생각과 판단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다른 입장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저쪽 편’으로 내몰면서 경계를 정당화하는 것에 있다. 여전히 우리라는 표현의 사용법은 편 가르기를 위한 도구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는 ‘3기니’(Three Guineas)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사실들이 감춰져 있는지를 조목조목 밝혔다. 공유하지 않거나 공유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사이에 두고도, 천연덕스럽게 ‘우리’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울프의 비판은 당시의 여성 문제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지적은 문화와 역사, 시공간을 초월해서 여전히 유효하다. 왜 우리라는 말로써 오히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일에 몰두하는가? 남녀 문제가 그렇고, 직장에서도 세대 간에도 이웃 간에도, 특히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다. 심각하게 부당한 이해관계지만 나눠 먹을 것만 있으면 오늘은 내 편이고 내일은 저쪽 편이 된다.

‘나’와 다른 모든 사람을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삶은 전쟁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삶은 상처와 혐오, 냉소로 돌아온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얻은 삶이 어찌 자랑스러울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필연성은 건강한 우리-공동체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패거리를 지어서 힘을 독점하고 배제와 소외를 합리화하기 위한 집단이 아니고, 무시와 모멸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먹기가 아니고,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행’하는 우리-공동체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안과 밖으로 구분하는 경계의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 경계는 밖에 있는 것을 함부로 규정하고 소외하는 수단이다. 타인이 겪는 상황과 고통에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동정과 연민이 때로는 냉소와 비웃음만큼 큰 상처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편을 가르는 경계를 허무는 힘은 진보하는 미래와 희망의 공유에서 나온다. 희망이란 바로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가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면 지금을 함께 견딜 이유도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란 서로에 대한 믿음, 지금의 불안과 고통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가 ‘미래도서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다. 무척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다. 한강 작가는 선정 소감문에서 이렇게 희망을 말했다. “나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근거가 불충분한 희망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다. 믿음과 희망은 충분하고 완벽한 조건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희망은 불완전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당위다. 한 작가의 작품은 2114년에야 출판될 것이다. 한 작가를 통해서 약 100년 뒤에 일을 지금 시작하는 것, 그것이 곧 희망이며, 희망은 실천이고 행동임을 본다. 그리고 우리가 왜 진정한 우리가 되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한다. 더 다양하고, 더 자유롭고 더 성장하는 ‘우리’가 되는 것이 곧 미래를 위한 희망의 실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