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 외롭고 가난한 소년의 가슴에 어느 날 헤세가 걸어왔다. 헤세를 읽으며 보낸 그 겨울밤의 맑고 시린 바람 소리는 지금도 내 안에 살아있다.”

박노해 시인의 말에 등장하는 것처럼, 청소년 시절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소설 한 두권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며 두 주인공의 삶속에서 함께 허우적 대고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을 읽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을 거다.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는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작가다.

그 중에서도 ‘데미안’은 많은 청춘들의 필독서였다. 싱클레어의 여정을 따라가며 함께 데미안을 만나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는 구절을 메모해 두기도 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2016년 발매한 두번째 앨범 ‘Wings’의 타이틀곡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 제작 당시 ‘데미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며 또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내 삶에 스며든 헤세’는 사회명사 58인이 들려주는 ‘헤세와 나’의 이야기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영화평론가 전찬일(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이 기획한 책은 문인, 종교인, 학자, 경제계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이들이 자신이 읽은 ‘데미안’을 비롯해, 헤세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삶이 변하게 된 과정 등을 풀어냈다.

강은교 시인은 ‘데미안’에 등장하는 신비의 새 ‘아브락사스’를 찾아 알 수 없는 길을 걸었다고 이야기하며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는 헤세의 책들은 “철저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살고 책임을 지며, 남을 사랑하고 봉사하여 인류의 평화를 수호하라는 가르침을 준다”고 말한다.

필명 ‘로자’로 알려진 이현우는 헤세의 고향인 독일 칼브 여행기에 버무린 ‘수레바퀴 아래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들려주며 경제학자 우석훈 역시 이 작품을 기억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현재 세상을 바라보는 ‘감성’의 탄생을 말한다. 그밖에 책에서는 변호사 최재천, 소설가 이외수, 음악평론가 임진모, 사진작가 김홍희, 부산시장 오거돈, 이해인 수녀 등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또 책에는 한희원 작가와 이영희 작가의 그림 8점이 함께 담겼다. 한 작가는 ‘나의 싱클레어, 나의 데미안’을 통해 젊은 시절을 추억했으며 ‘푸른길’(2019), ‘바이올린 켜는 사람들-양림 골목길’(2016) 등을 실었다. <라운더바우트·2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