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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휴식을 취하듯… 내 집에서처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곳
런던 내셔널갤러리
트라팔가광장서 이어진 ‘국립미술관’
13~19세기 거장 회화 2300점 전시
설립 당시부터 연중무휴 무료개방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예술교육 역점
2019년 05월 24일(금) 00:00
런던의 중심가인 트라팔가 광장에 자리한 내셔널갤러리 전경.
런던 중심가에 자리한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는 미술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런던을 몇차례 방문한 나도 매번 빠지지 않고 들렀던 곳도 바로 내셔널갤러리였다. 내셔널갤러리에 ‘꽂힌’ 이유는 컬렉션과 ‘분위기’때문이다. 세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문제적 작품’들이 많은 데다 미술관 내부도 저택의 거실이나 서재처럼 오븟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방문객의 입장에선 이보다 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늑하다.

내셔널갤러리를 방문하기 위해선 런던의 명소인 트라팔가 광장(Trafalga Square)으로 가야 한다. 트라팔가 광장이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빅벤, 버킹검 궁전, 세인트 제임스 파크, 피카딜리 서커스 등과 동서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걸 감안하면 접근성이 얼마나 좋은지 짐작할 수 있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트라팔가 광장을 찾던 날, 예상 보다 훨씬 많은 인파에 놀랐다. 연중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지만 봄 시즌의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광장을 가득 메운 건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비둘기 떼다. 요즘에는 BTS 팬들의 ‘플래시몹’ 등 한류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성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광장의 에너지는 미술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흔히 미술관 하면 정적이고 딱딱한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전시장 가운데 놓인 소파에 앉아 그림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관람객들이 눈에 쉽게 띈다. 선생님을 따라 단체 관람을 온 초등학생들에서 부터 딸에게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는 어머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까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거장들을 만난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만인의 미술관’이다.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 미술관 처럼 블록버스터급 기획전시 없이도 매년 평균 574만 여 명(2018년 기준)의 방문객이 찾는다.

내셔널 갤러리는 1824년 신고전양식의 대가 윌리엄 윌킨스가 설계한 미술관으로 13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회화 23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왕실 소유의 미술품이 모태가 된 여타 유럽의 미술관과 달리 1824년 금융인인 존 앵거스타인(John Julius Angerstein)의 후손으로부터 5만7000파운드를 주고 38점의 작품을 수집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내셔널갤러리는 찰스 로크 이스트레이크(Charles Lock Eastlake)경과 같은 유명 인사들의 컬렉션을 구입하는 등 컬렉션의 3분의 2가 개인 기부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내셔널갤러리의 내부 인테리어는 저택의 거실이나 서재처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작품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유럽의 다른 유명미술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범위는 ‘서양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6~1337)에서부터 ‘근대회화의 아버지’인 폴 세잔(paul cezanne·1839년~1906년)까지 세계미술사에 한 획을 그린 명작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소장품은 모두 국가소유로 문화·미디어·스포츠부의 보조를 받지만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설립 초창기에 조직된 운영위원회가 ‘박물관·미술관 운동 1992’라는 조직의 세부원칙에 따라 관리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위원회가 최고로 여기는 가치는 모든 사람이 내 집에서처럼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갤러리는 설립 당시부터 모든 이에게 무료 공개되고 있다. 미술관의 접근성부터 소장품의 취득 , 관리, 운영 등에서 내셔널갤러리가 걸어 온 역사는 국·공립 미술관들의 교과서이다.

런던 시민들은 거의 연중무휴로 무료 개방되는 내셔널 갤러리를 안방의 거실처럼 드나든다. 직장인들은 점심 식사시간에 잠시 들러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고 일터로 돌아가곤 한다.

런던 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비결은 빼어난 컬렉션이다. 말 그대로 인류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거장들의 명작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1888년 작).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화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 홀바인 2세의 ‘대사들’, 쇠라의 ‘아스에르의 목욕’,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저녁식사’,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렘브란트의 ‘목욕하는 여인’,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 에드가 드가의 ‘목욕 뒤 말리는 여인’, 모네의 ‘수련 못’, 윌리엄 터너의 ‘증기속에 떠오른 태양’ 등 그야 말로 세기의 걸작들이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들 가운데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The Arnolfini Portrait·1434년 작)는 내셔널 갤러리의 아이콘이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시대의 북유럽 화가인 에이크가 플랑드르를 거점으로 무역업을 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이다. 그는 이들의 결혼식 또는 약혼식에 참석해 그렸다고 전해지는 데, 이는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노라/1343’라는 글귀가 그 증거로 해석된다.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요즘의 ‘인증샷’쯤 으로 볼 수 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는 작품에는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 내셔널 갤러리가 개관 이래 역점을 두고 분야는 교육이다. 화려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유아에서 부터 학생, 성인, 시니어 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감수성과 예능적인 재능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 홈페이지에서는 초등학생과 중등학생용 교육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으며 교사들을 위한 교육용 자료도 인터넷에서 참고할 수 있다.

/런던=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