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에게 가해자가 언젠가는 법정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 범죄 해결을 위해 우리가 끝까지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9일 광주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열린 ‘광주아시아포럼’ 발표자로 나선 옌스 롬멜(Jens Rommel) 독일 나치범죄중앙사무국장은 과거사 청산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롬멜 국장은 이날 ‘미완의 과거 청산-성과의 쟁점2’ 두번째 발표자로 참여해 ‘홀로코스트에서 배우는 교훈’을 주제로 독일의 나치 부역자 처벌 과정을 소개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논쟁거리인 5·18민주화운동과 달리 독일 나치 범죄는 끝까지 처벌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지난 1950년대에 이미 이뤄졌다. 나치 부역자 처벌을 위해 법적·행정적 지원을 하는 나치범죄중앙사무국은 1958년 설립됐다.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퍼져 있는 나치부역자를 추적하고 검찰에 자료를 넘겨 기소를 이끌고 있다. 독일은 올해에도 폴란드에 세워진 독일 나치 강제수용소 경비원으로 일했던 92세 남성을 법정에 세우는 등 지난 60년간 나치 부역자 7000명을 기소했다.

롬멜 국장은 나치 범죄자 처벌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시간을 꼽았다.

그는 “세월이 지나며 국내(독일) 기록은 대부분 파괴됐고, 외국에 있는 자료는 접근이 어렵다”며 “또 관련자들이 사망하고 있다는 점도 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 범죄에 관한 재판은 대부분 수십 년 전에 일어났기 때문에 일반 형사 재판과는 다르게 증언이 아닌 기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독일은 미국 법무부, 폴란드 범죄수사위원회와 협조 체계를 구축했다”고 조언했다.

독일은 나치 범죄자들을 직책이 높은 책임자와 직책이 낮은 실행자 두 그룹으로 나눠 다루고 있다. 책임자의 경우 기록에 이름이 있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만 경비원이나 운전기사 등 실행자들은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렵게 실행자들은 찾았더라고 그들이 범죄를 부인하면 법정에 세울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롬멜 국장은 “지금까지의 조사 경험에 봤을 때 피고들이 희생자에 대한 반성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경우는 드물었다”며 “그들에게 자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범죄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기록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나치범죄는 범죄 장소가 대다수 파괴됐기 때문에 3D가상현실을 활용해 그때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법도 이용하고 있다.

롬멜 국장은 “지난 60년 간 우리가 했던 나치 청산 과정을 광주에 소개할 수 있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5·18에 대한 진상조사도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는 인도네시아 벳조 운퉁 사회연구단체 ‘YPKP65’ 회장도 참여해 1965~1968년 자국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에 대해 소개했다. 벳조 운퉁씨는 “1965년 10월부터 4개월간 50만~300만명의 공산당원들이 수하르토 정권에 의해 희생됐다”며 “인도네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규모나 진상을 조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아르헨티나 과거사 정리와 교훈’ 발표에서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1973~1983년 아르헨티나 비델라 정권의 납치·고문·암살을 소개하고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청산과정을 조명했다.

/글·사진=김용희 기자 kimy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