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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더불어 즐겁게 살자’는 생태적 인식전환 필요”
2019년 05월 07일(화) 00:00
강판권 계명대 교수는 사람들이 나무와 더불어 사는 ‘여수동락’(與樹同樂)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지난 2017년 6월, 경북 구미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숲 해설을 하고 있는 강교수(중앙). <경북 구미 도립도서관 제공>
강판권(58)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역사학에 학문적 뿌리를 두고 ‘나무’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연구한다. 나무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읽어가는 ‘수학’(樹學), ‘생태사학’이라는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숲은 생명지닌 나무들의 공동체= “인간이 나무와 숲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다.”

‘생태사학자’ 강판권 교수는 지난해 11월 펴낸 ‘숲과 상상력’(문학동네 刊)에서 “숲은 원융(圓融)의 산물”이라며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무들이 각각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원만하게 융합하는 원융에 따라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고 밝힌다.

또한 숲을 보는 방법으로 ‘멀리서 보는 것’(望)과 ‘자세히 보는 것’(觀)을 소개한다. 멀리서 숲 전체를 보고,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살피는 것이다. 흔히 숲을 찾는 사람들은 ‘숲은 사람만의 공간’이라고 착각한다. 강 교수는 나무를 생명체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생태적’인 태도와 ‘숲의 가치에 대한 이해부족’을 안타까워하며 ‘생태적 인식전환’을 역설한다.

최근 강 교수 연구실을 찾았을때 ‘여수동락(與樹同樂)’이라 쓰인 액자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나무와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자’는 의미다. 강 교수가 지향하는 학문의 목표와 삶의 자세가 압축돼 있는 사자성어다.

강 교수는 ‘쥐똥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누군가 불러준게 아니라 스스로 지었다. 물푸레나무과 관목(떨기나무)인 쥐똥나무는 키가 작고, 주로 생울타리로 활용되는 나무다. 강연장에서 방청객들이 ‘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질문을 많이 한다. 그 역시 나무를 공부하던 초기에는 나무이름에 반감을 가졌다. 그렇지만 나무를 깊이 공부하면서 쥐똥나무 나름의 철학을 발견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면서 다른 존재와 협력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다.

◇나무 관찰 과제 통해 잠재력 교육=그가 학문의 화두(話頭)로 삼고 있는 ‘나무’란 무엇일까?

“나무는 삶이죠. 그것은 나의 삶이기도 하고 모든 생명체의 삶이죠. 삶의 조건을 제공해주는 게 나무라고 볼 수 있죠. 인류역사에서 사실 나무는 자체가 삶이고, 나무의 삶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존재케 해주는 게 바로 나무가 아닐까요.”

강 교수의 수업방식과 레포트 과제는 독특하다. 교양과목 ‘전통생태문화 수업’의 경우 올해 16주 가운데 7주 정도를 야외에서 수업한다. 예를 들어 살구꽃이 피면 학생들을 데리고 나서 야외 수업을 하면서 살구꽃을 노래한 시를 함께 읊는다. 오디(뽕나무 열매)가 익으면 학교 뽕나무 밑으로 가 오디를 이어폰처럼 귀에 꽂기도 한다. ‘생태적인 공부법’이자 ‘나무 놀이’이다.

또한 교내 나무를 일일이 세고, 자기 나무를 임의로 정해서 학기동안 일주일에 2번 관찰일지를 기록하라는 과제를 낸다.

“학생들이 (나무를 세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짜증을 내요. 세면서 학교를 돌다보면 나무가 참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때서야 나무가 보입니다. 나무를 세면서 (학생들에게)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태어나서 한 나무를 자기 힘으로 관찰한 적이 없어요. 나무 이파리가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껴요. 또 나무를 세면서 여유를 갖게 돼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맙다’고 해요.”

강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기 발걸음으로 나무를 관찰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이는 나아가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열어주는 이런 방식의 강의를 그는 ‘교육의 혁명’이라고 한다.

강 교수 역시 20여 년 전 똑같은 방식으로 ‘나무 공부’를 시작했다. 교내 나무를 일일이 세고 나무 수피와 가지, 잎모양, 열매 등을 관찰했다. ‘나무 공부’는 끊임없다. 2011년 교체해 8년째 타고 있는 승용차를 30만㎞나 주행할 정도로 지금도 주말과 방학마다 쉼 없이 전국 각지의 나무와 숲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전북 무주군 덕유산 자연휴양림내 독일 가문비나무 숲.
◇인문학과 나무 융합한 학문체계 정립=강 교수는 1961년 경남 창녕군 고암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 농사일을 거들었다. 1981년 계명대 사학과에 입학한 후 대학원에서 중국 청나라말 정치외교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9년 경북대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농업사로 전공분야를 바꿔 ‘중국의 청대 농업경제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 교수는 불혹(40세) 나이 즈음, 가장 힘든 시기에 ‘나무’를 만났다. 나무에게 ‘길’을 물었고 나무에게서 ‘나만의 길’을 찾았다. 나무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기존 갖고 있던 열등의식을 떨쳐버리고 ‘나무’를 학문의 대상으로 마주하며 자존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역사학에 학문적 뿌리를 두고, ‘나무’로 인문학 영역을 확장했다. 이런 시도를 두고 주위에서 역사학자가 나무를 연구한다며 ‘외도’라고 했다. 하지만 학문간 ‘통섭’과 ‘융합’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독보적인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강 교수는 지금의 인문학 위기는 ‘인문학자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현 시대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20세기 방식으로 인문학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기존 역사학은 가장 기본적인 ‘자연생태’를 안보고 ‘인문생태’만 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자의 역할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생태사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가 지난 2002년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를 시작으로 지난해 ‘숲과 상상력’까지 펴낸 나무 관련 책은 모두 26권. 올 하반기에 2권의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앞으로 정년때까지 쓸 10여권의 책 주제를 이미 정해 놓았다. ‘나무 개그’와 ‘나무 동화’도 써볼 생각이다.

강 교수는 ‘나무예찬’에서 “나의 꿈은 공자의 삶처럼 나무로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피력한다. 나무를 통해 모든 것을 꿰는 ‘수이관지’(樹以貫之)의 경지다. 또한 “나무를 사랑 하는 법을 새롭게 정립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무와 더불어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힌다.(‘자신만의 하늘을 가져라’ 샘터 刊)

또한 그는 ‘일상에서 나무와 만나며 얻은 인문학적 지혜’를 오래도록 나누고 싶어한다. ‘쥐똥나무 학교’도 그러한 꿈의 실천이다. 사단법인 같은 조직체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가 ‘교장’이고,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가는 숲이 ‘학교’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들이 학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강 교수는 ‘나무 행복론’을 강조한다. ‘숲과 상상력’ 맺음말에서 마음에 나무를 심어 언제나 쉴 수 있는 ‘마음의 소도’(蘇塗)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삼한시대 제사 장소였던 소도는 언제나 ‘솟대’(솟아오른 나무)가 있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마음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숲의 가치도 마음에서 결정된다. 마음에 숲을 만들려면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면 힘들고 지칠 때 언제든지 나무 아래서 쉴 수 있다. 나는 이같이 마음에 조성한 숲을 ‘마음의 소도’라 부르고 싶다.”

초대석 >>> 강판권 나무 인문학자

불혹의 나이에 시작해 20년째 ‘나무공부’ 멀리선 숲 전체를… 가까이선 숲 속 나무 살펴 숲·나무 인문학적 지혜 모아 ‘쥐똥나무 학교’ 목표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