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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세계 미술관 기행 <5>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자연·예술·인간의 조화… 이곳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19세기 양식’ 숲속의 2층집
세계적 컬렉션·스케일 자랑
관람객 눈높이 맞춘 평면적 설계
정원호수·자코메티 작품 조화 탄성
‘열린공간’ 어린이 스튜디오 인기
문화 사랑방·교육의 장 역할도
2019년 04월 25일(목) 00:00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쯤 달리자 훔레벡(Humlebæk)이라는 아담한 마을에 도착했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차창밖으로 보이는 목가적인 풍경이 이방인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코펜하겐 중앙역 직원이 일러준대로 출구를 빠져 나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얼추 10분쯤 달렸을까. 버스에서 내리자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이방인을 반겼다. 버스 정거장에서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가려면 약 5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전원주택들이 방문객을 맞았다. 미술관이 멀지 않았는지 관람을 마치고 나온 듯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들의 얼굴에선 번잡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 것 처럼 여유가 넘쳤다.

마침내 루이지애나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미술관이 아닌 시골 별장을 떠올리게 하는 아담한 2층 빌라였다. 여느 집과 다른 게 있다면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숲속의 집이라고 할까. 정원 한 가운데에는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의 대형 대리석 조각이 놓여 있었다. 순간,‘겉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상상을 뛰어 넘는 컬렉션에서 부터 자연과 예술, 그리고 한 컬렉터의 고귀한 메세나 정신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인적이 드문 덴마크의 시골마을을 글로벌 명소로 키운 기적의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미국의 루이지애나주를 연상케 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원래 이 곳에 19세기 양식의 빌라를 지은 땅 소유자가 세 명의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희한하게도 이들의 이름이 모두 ‘루이스’(Louise)여서 빌라 명칭을 루이지애나로 했다고 한다. 얼마 후 이 빌라의 새 주인이 된 크누드 젠센(Knud W.Jensen·1916~2000)은 이런 사연이 마음에 들었는지 루이지애나라는 이름을 미술관 명칭으로 사용했다.

젠센은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치즈 도매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기업인이다. 하지만 평소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지역의 청년 작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소장품들이 늘어나자 자신이 예술품으로 부터 위안을 받은 것 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 미술관건립을 꿈꿨다.

마침내 1958년 자신의 주택에 미술관을 세운 후 사업가라는 직함 대신 미술관 수장이라는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오랜 세월 젠센이 가슴에 품어왔던 미술관은 죽기전 꼭 한번 봐야 하는 명작들을 볼 수 있는 ‘모나리자 데스티네이션’(Mona risa destination)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쇼윈도에 걸린 옷을 시간에 쫓겨 스치듯 관람하는 백화점이 아니라 1~2일 또는 한나절 미술관에 머무르며 예술품과 소통하는 쉼터를 지향한 것이다. 지난 1994년 미술비평가 존 러셀(John Russell)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은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색깔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루이지애나 방문객들은 단시간에 많은 명작을 보기 위해 눈도장만 찍느라 마음이 불편해지는 백과사전식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이 곳에서 관람객들은 자연과 예술품을 통해 힐링과 위안을 받는, 일종의 심리적 치료를 얻는다. 30여 년 동안 루이지애나를 방문하면서 단 한번도 시간에 쫓겨 서두르거나 피곤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의 지적대로 미술관에 들어서면 속세를 떠난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스웨덴의 오레선드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푸른 잔디 위에는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분신’이 곳곳에 자리해 자연과 바다, 예술이 공존하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풍경’이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알베르토 지코메티(Alberto Giacometti),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루이스 부르조아(Louise Bourgeois),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댄 그래함(Dan Graham),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장 드뷔페(Jean Dubuffet) 등 거장들의 컬렉션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여기에는 젠센의 독특한 건축 컨셉이 한몫한다. 그는 자연과 예술, 인간이 호흡하는 공간을 기대했다. 젠슨의 의뢰를 받은 건축가 빌헬름 볼레느트와 요르겐 보는 2층 빌라의 높이에 맞춰 전시장을 평면적으로 설계,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을 연출했다. 이 때문에 멀리서 보면 숲속에 미술관이 숨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미술관의 한가운데 자리한 아트숍 겸 카페를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의 전시장인 분관(wing)은 대형 설치작품을 전시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각 전시실로 이어지는 복도는 통유리로 마감돼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조각품들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야외 갤러리이다.

뭐니뭐니 해도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강점은 화려한 컬렉션이다. 특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갤러리는 미술관의 ‘아이콘’이다. 갤러리의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정원의 호수와 깡마른 청동 입상의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Waking man)의 조화는 탄성을 자아낸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또 다른 미덕은 커뮤니티와의 끈끈한 연대다. 세계적인 컬렉션과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사랑방으로서도 기꺼이 안방을 내주고 있다. 정기적으로 기획전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덴마크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편 작가와의 대화, 음악회, 연극을 무대에 올려 지역민들의 문화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특히 어린이 스튜디오는 지역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열린 공간’이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미적 안목을 키우는 교육의 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미술관에 가는가.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준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예술품으로 부터 정서적 힐링을 얻고 싶을 때,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싶을때…. 이곳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잊지 못할 감동을 만난다.

/코펜하겐=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