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 인사 청문회를 보노라면 옛 중국 전국 시대의 대장군 한신(韓信)이 떠오른다. 한신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풍운아지만 젊었을 때 워낙 가난해 밥을 빌어먹을 정도였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그는 항상 칼을 차고 다녔는데, 이 칼이 시비를 불렀다. 한신이 고향 회음의 시장 거리를 지날 때 불량배 한 명이 시비를 걸었다. “넌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사실은 겁쟁이다. 너에게 사람을 죽일 용기가 있다면 그 칼로 나를 찔러라. 그렇지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둘러선 구경꾼들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한신은 땅바닥에 엎드려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나왔다.

모두가 겁쟁이라고 비웃었지만, 한신은 훗날 성공하여 초왕이 되었을 때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불량배를 찾아내 높은 벼슬을 내렸다. 한신은 의아해 하는 부하들에게 말한다. “나에게 망신을 줄 때 내게 그를 죽일 힘이 없었겠는가. 그때 모욕을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면 나는 죄인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을 것이다. 큰 뜻을 품은 내게 그를 죽이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래서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아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유명한 ‘과하지욕’(袴下之辱)의 유래다.

청문회장에 선 고위 공무원 후보들의 벌게진 얼굴에 한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들이 온 국민 앞에서 꿋꿋이 견뎌 내고 있는 ‘굴욕’때문이다. 부동산 투기부터 시작해 위장 전입, 주식 투자, 병역 기피, 탈세 등 온갖 의혹을 끄집어내는 국회의원들에게 ‘죄송하다’‘관행이었다’‘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장관이 되면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후보들의 모습이 참 처량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이 모욕을 참아 내게 하는 것일까.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말처럼 자신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 있을 후보들이 ‘그럼에도’ 청문회장에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자리, 큰 권세를 바랐을 뿐 한신처럼 ‘큰 뜻을 품어서’는 아닐 것이라는 게 국민의 판단이다. 국민의 눈높이를 운운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