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의 미덕은 무엇일까? 새로움에 대한 발굴이다. 역사 보고(寶庫)의 가치는 세세한 사실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 역사에서 정유재란은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정유재란은 통상적으로 ‘임진왜란의 화의교섭 결렬로 재차 발발한 왜란(1597)’을 일컫는다. 임진왜란이 내륙으로 진격해 명나라까지 정복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 노골화한 것이라면, 정유재란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이 주 목표였다.

흔히 임진왜란을 16세기 말 조선에서 발발한, 그로 인해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역사에 적잖은 파문을 낳은 ‘동아시아 세계대전’ 또는 ‘동아시아 7년 전쟁’이라고 부른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 명나라와 일본 간 협상의 결렬로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일본군이 우리나라를 다시 침범하면서 정유재란이 일어난 것이다.

정유재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전후의 역학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3국의 전략과 강화협상 등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한·중·일 역사학자 9명이 머리를 맞대고 정유재란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책이 발간됐다. 정유재란 발발 7주갑(420주년) 되던 해인 217년 임진왜란 특성화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주최했던 국제학술심포지엄의 결과물이다.

김경대(고려대 CORE사업단), 천상승(중국 산둥대학), 오타 히데하루(일본 가고시마 국제대학) 등 9명의 저자가 쓴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은 전쟁사를 넘은 외교, 경제, 건축 등 입체적인 결과물이다. 책은 당시 발표문을 정리 보완한 것으로 3국 학자들의 ‘합작’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정왜기공도병’ (전반부) 4도. 병풍에는 명군(남병)이 황해를 건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책은 정유재란 당시 당사국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소유구(필리핀)에 입공(入貢)을 재촉하는 서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스페인 왕도 바닷길이 멀다 하니 내 말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 대명이라고 할지라도 정토하려고 한다. 너희 나라도 빨리 본조에 복속하는 것이 지려 깊은 선택일 것이다.”

히데요시의 야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과 9편의 글이지만 책에는 울산성·순천성 전투와 명량해전 등 전쟁사 복원을 넘은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 현지에서 벌어진 교섭과 명나라의 전쟁준비 규모, 조달 조치 등을 수록하고 있어 울산왜성 탐구 등 정유재란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정유재란의 참혹한 장면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코베기로 상징되는 살육과 신체 훼손, 약탈, 납치 등”이 수시로 벌어졌고, 수많은 양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전쟁은 끝났지만 그 의미는 임진왜란 못지않았다.

정유재란이 임진왜란 때와 다른 점은 당시 조선의 대응이었다. 일본군이 언제 내습할지 파악했으며 한강 사수 방침을 세웠다. 승군·복수군, 북방 병졸 징발 등 병력 확보책을 세웠다. 민심 안정 도모책도 제시했다. 조보(朝報)에 “적들이 나오더라도 내년 봄에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을 기재했던 것이다.

일본 측의 사정도 여러 부문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첨가됐다.

히데요시 최측근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화전 양면으로 갈려 내분 상태인데다, 화의 조건으로 조선 왕자의 인질과 하3도 할양을 요구하는 등 명분 확보와 조선 점령을 겨낭했다.

전쟁 추이와 삼각의 전략 구도도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강화협상 과정에서 조선은 수동적이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허남린 교수는 조선이 취한 일본과의 무타협주의와 조선의 굴복을 통한 철군 명령을 확보하기 위해 재침에 나선 일본의 선택, 최소한 희생으로 전쟁을 끝내려 한 명군의 전략을 다각도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악과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 양국 관계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21세기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서는 극일(克日)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것의 기본 전제는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푸른역사·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문학박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