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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맛있는 이야기’] 영화 ‘극한 직업’과 수원 통닭 거리
2019년 04월 04일(목) 00:00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무려 1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한 영화 ‘극한 직업’. 개봉하자마자 이 영화를 관람하던 어느 치킨집 대표는 당장이라도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조바심이 났다.

그는 수원 팔달구에 있는 ‘통닭 거리’에서 2017년 치킨집을 열었다. 주변에는 이미 수십 년 넘는 업력을 가진 치킨집 10여 곳이 성업 중인 상태라 자신만의 경쟁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원 출신이었던 그는 수원의 명물인 왕갈비 양념과 치킨을 결합하기로 했다. 그렇게 ‘왕갈비 통닭’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고객의 반응은 싸늘했다. 왕갈비 통닭을 찾는 고객은 하루 기껏해야 한두 팀. 결국 출시 3개월 만에 판매가 중단되는 수모를 겪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치킨집 대표는 2년 전에 접었던 왕갈비 통닭을 당장 부활시켰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영화에 나왔던 음식을 실제로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 치킨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열광하는 치킨 공화국 국민이 가만있을 턱이 없었다. 수원 토박이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치킨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갑작스러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오전과 오후 각각 100마리씩만 판매하는 특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치킨집 주인에게도 왕갈비 통닭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극적인 반전이었다. 영화에 등장한 왕갈비 통닭에 수원이라는 지명이 붙지 않았더라면, 영화가 1600만 명이라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드라마였다. 사람의 운명이 그렇듯 음식의 운명 역시 알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통닭 거리 전체의 반응이다. 2년 전 처음 왕갈비 통닭을 선보였던 집뿐만 아니라 통닭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왕갈비 통닭을 만날 수 있다. 굳이 누가 원조라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사실 왕갈비 맛 양념 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다. 간장·물엿·마늘의 기본 조합 정도면 얼마든지 비슷한 맛을 구현할 수 있다. ‘극한 직업’의 제작진조차 촬영 기간 내내 1000마리의 닭을 소비하면서 닭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소품은 시판용 갈비 소스였다.

그래서 수원 통닭 거리 상인들은 ‘극한 직업’이 가져온 뜻밖의 기회를 일회성이나 특정 업체만의 수혜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상인들이 직접 출연해 영화를 패러디한 홍보 영상을 찍었는데 이는 SNS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통닭 거리 상인들 특유의 유대감은 거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가마솥에 통째로 튀겨 내는 옛날 방식 그대로의 통닭에서부터, 새로운 세대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치킨에 이르기까지, 유행을 좇기보다는 저마다의 개성을 부각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수원시 팔달구의 통닭 거리는 1970년에 첫 번째 통닭집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서울의 위성 도시로 성장한 경기도의 다른 시군과 달리 수원시는 서울-인천-수원이라는 수도권 삼각 벨트를 이루며 자립 도시로서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울러 당시 수원시와 인접한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지금의 화성시 봉담읍)에는 수도권에 육계를 보급하기 위한 양계 농가가 많았다.

임금 노동자라는 충분한 수요층과 인근 양계 농가에서 보급되는 신선한 닭. 수원과 통닭의 인연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별다른 염지 없이 기름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노릇노릇 튀겨 낸 닭 한 마리. 그것은 때로는 노동으로 지친 하루의 피로를 풀어 주는 서민의 술안주였고 때로는 온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는 아빠의 반가운 선물이었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100미터 남짓한 거리에는 15곳의 치킨집이 생겼고 수원의 성장에 비례해 그 규모 역시 늘어났다. 식재료를 공급해 주는 배후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풍부한 수요층 그리고 도시의 성장. 수원 통닭 거리는 우리나라에서 음식 거리가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에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상인들 특유의 유대감이 더해졌다. 덕분에 거리 전체가 영화의 흥행과 함께 시작된 국민적 관심의 수혜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음식 거리 혹은 음식 골목이 있다. 이곳들이 지역 관광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지방 자치 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음식 특화 거리’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대부분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업의 주체인 상인 스스로의 자각과 상생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식 특화 거리 사업을 모색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수원 통닭 거리의 사례를 면밀하게 관찰해 보실 것을 권한다. 기회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지만 그 기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준비된 자들의 몫이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