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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세계 미술관 기행 <3>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고대 이집트·그리스부터 현대까지…맥주 父子의 ‘조각 사랑’
칼스버그 창립자 아들 칼 야콥센 1897년 설립
로마 조각상·인상주의 회화 등 1만여점 소장
‘북유럽의 루브르’…연간 관람객 40만명 달해
2019년 03월 28일(목) 00:00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덴마크 여행의 시발지는 코펜하겐 중앙역이다’. 유럽을 여행해 본 이라면 누구나 철도여행의 매력에 감탄하기 마련이다. 철도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배낭족이라 할지라도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코펜하겐도 도시 중심부에 철도역이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가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이하 칼스버그 미술관)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세계적인 맥주회사 ‘칼스버그’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칼스버그 맥주회사 창립자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인 칼 야콥센(Carl Jacobsen·1842~1914)이 설립한 곳으로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에서 부터 오귀스트 로댕, 인상주의 회화, 덴마크 황금기의 예술품에 이르기 까지 1만 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1층에 꾸며진 ‘겨울정원’.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제공>
글립토테크는 쪼다, 조각하다의 그리스어 ‘글리페인’(glyphein)과 장소를 의미하는 ‘테크(theke)’의 합성어로 조각미술관이라는 뜻이다. 명칭에서 드러나듯 지중해 인근의 이집트, 그리스, 고대 조각품들이 미술관의 모태가 됐다. 칼 야콥센은 맥주 제조로 일군 막대한 부의 일부를 조각품을 구입하는 데 기꺼이 할애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과 근현대 미술품을 선호하는 일부 부호들과 달리 그는 조각품 수집에 공을 들였다. 야콥센이 ‘조각사랑’에 빠지게 된 건 덴마크의 전설적인 조각가 알베르트 베르텔 토르발센(Albert Bertel Thorvaldsen·1768년 추정~1844년)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면서 부터. 18~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토르발센은 대리석과 청동으로 인물 흉상 등을 제작했고 말년에는 저명인사의 기념물을 주로 작업했다. 당시 유럽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기업인은 물론 재력가들 사이에는 토르발센의 기념물을 소장하는 게 유행이 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칼 야콥센이 토르발센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 부터 아버지(Jacob Cristian Jacobsen)의 저택에서 토르발센의 조각을 접한 그는 그리스 신화의 소재들을 형상화 한 작품에 감동을 받았다.

미술관의 조각 컬렉션은 질적으로도 꽤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재력을 앞세운 ‘묻지마 구입’이 아니라 독일인 고고학자 볼프강 헬비그(Wolfgang Helbig)의 ‘큐레이션’ 덕분이다. 본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은 헬비그는 1887년 부터 로마에 거주하며 칼스버그 미술관의 아트딜러 역할을 했는데 이 때 그의 손을 거쳐 소장된 작품이 1000여 점에 가깝다.

고풍스런 분위기의 미술관에 들어서면 카이 닐센(Kai Nielsen)의 ‘워터 마더’(The Water Mother)의 조각상과 작은 실내 연못으로 꾸며진 ‘겨울정원’이 반갑게 맞는다.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싱그러운 정원은 말 그대로 최고의 도심 속 문화쉼터다. 동선을 따라 들어서 있는 나무 벤치에 노부부, 연인,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겨울정원을 지나 갤러리로 들어가면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조각 갤러리가 나타난다. 작품들 뿐만 아니라 갤러리의 인테리어도 기원전 시대로 되돌아 간 것 처럼 철저한 고증을 거쳐 사실적으로 재현됐다.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전경
고대 에트루리아(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옛 나라) 문명이 살아 숨쉬는 다양한 예술품에서 부터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 무덤 등에서 발견된 유물 등 희귀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칼스버그 미술관이 자랑하는 또다른 볼거리는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계열의 미술품과 덴마크 황금기의 수작들이다. 마네, 모네, 드가, 시슬리, 반 고흐, 세잔, 피카소, 로댕 등의 걸작은 물론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40여 점의 폴 고갱 컬렉션까지 면면이 화려하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낭만주의 조각가인 장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와 ‘칼레의 시민들’, ‘생각하는 사람’ 등 로댕의 작품은 프랑스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프랑스 작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1834-1917)의 컬렉션 역시 칼스버스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다. 발레하는 소녀의 순간적 동작을 포착한 탁월한 데생력으로 유명한 그는 회화와 드로잉 뿐만 아니라 조각분야에서도 뛰어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칼스버그 미술관은 드가의 회화와 드로잉, 조각 등을 총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무희’(Dancer)시리즈와 회화 등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가 갤러리’는 인기가 많다.

마네 작 '압생트 애주가'
또한 인상주의 거장인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1883)의 작품 2점은 칼스버그 미술관의 명성을 확인시켜준다. 바로 ‘막스밀리안 황제의 처형’(The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과 ‘압생트 애주가’(The Absinthe Drinker)다. ‘막스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마네가 1867년 부터 1869년까지 그린 작품으로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처형 장면을 거친 표현과 색채로 담아낸 그는 전쟁의 폭력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모더니스트적인 면모를 느끼게 한다.

‘압생트 애주가’(1859년 작)는 1850년 부터 토마스 쿠트르 스튜디오에서 그림수업을 받은 후 그린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스타일을 답습하는 풍조가 싫어 스튜디오를 나온 그는 1856년 자신의 화실을 열어 회화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기에 제작한 대부분의 작품을 폐기하는 바람에 아주 소수의 작품만 살아 남았는데, ‘압생트 애주가’가 그중의 하나다. 이처럼 6000년에 걸친 인류의 여정을 품고 있는 칼스버그 미술관은 북유럽의 ‘루브르’로 불리며 매년 전 세계에서 40여 만 명의 관람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코펜하겐=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