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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싶은 당신들의 비밀
[윤영기 여론특집부장]
2019년 03월 13일(수) 00:00
최근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제2순환도로 1구간(두암IC∼지원IC) 변경협약서를 구해 읽어 보았다. 협약 당사자는 맥쿼리 한국 인프라투융자와 광주시로 지난 2016년 12월 기존의 협약을 바꿔 체결했다. 의혹의 핵심은 혈세를 줄이기 위해 재협약에 나섰음에도 광주시가 업체에 지불하는 재정 지원금이 2016년부터 3년 동안 19억 원 더 지출됐다는 것이다. 추가 지출에 대한 의문은 맥쿼리 측과 광주시 간 이면 계약 존재 여부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협약서는 한 공무원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문건이지만 아직까지 일반인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양측이 서명한 협약을 훑어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협약 당사자는 이 협약의 종료 여부에 불구하고 상대방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이 협약의 내용이나 이 협약과 관련하여 알게 된 상대방 협약 당사자의 업무나 운영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조항은 협약서 하단에 ‘기타 사항’으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내용을 톺아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기타 사항’이 아니라 협약 내용 전체에 대한 영구 봉인이나 다름없다. 단서 조항으로 ‘법원에 의해 공개가 요구되는 정보의 공개’라고 적시했으나 역시 빈말이다. 제 3자가 문서를 보려면 ‘정보 공개 청구’라는 만만치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광주시에서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 승소 여부가 불투명한 민사 재판까지 가야 한다. 이렇게 광주시가 서명한 협약은 기밀이 되고 말았다. 감춰야 할 정보는 필시 기업의 영업 비밀이거나 자치단체·공공기관의 아킬레스건일 것이다.

'보안 계약' 왜 남발되는가

전남개발공사와 미래에셋이 지난 2017년 서명한 ‘여수 경도 해양관광단지 양수도 계약서’도 ‘웃픈’ 사례라 할 만하다. 도의회와 언론에서 지난해 10월 특혜 의혹 규명을 위해 계약서 공개를 촉구하자 전남개발공사에서 의원들에게 내놓은 것은 (비밀 유지)각서였다. 결국 의원들은 변호사 입회하에 문서를 들여다봐야 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비밀 엄수 조항은 공익 차원의 검증과 접근권까지 차단하는 꼴이 됐다. 공공사업이 국가 안보와 관련한 기밀처럼 다뤄진 것이다.

문화 기관도 비밀 협약에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문화원이 지난해 한 재단과 체결한 협약을 보면 이와 유사한 조항이 들어 있다. “양 기관은 상호 업무 협조를 수행함에 있어 취득한 정보에 대해서는 공개·배포·누출하지 아니하며, 이는 협약 종료 이후에도 또한 같다.” ‘모든 국민은 알 권리를 가진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인데 정부 산하 기관의 협약서마저 이렇다.

민간 기업을 참여시키는 공공사업의 특성상 관례적으로 넣는 비밀 조항을 가지고 괜히 트집 잡는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기업의 특허 기술 등 보호해야 할 정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최소한 견제 심리도 없는 무감각적인 남발에 있다. 기업 입장에서 공공 기관이나 자치 단체는 이익의 분배를 다투는 사업 파트너일 뿐이다. 기업이 태생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시장 경제의 작동 원리가 그렇다. 기업이 파이를 키우기 위해 계약서 곳곳에 전략적 문구와 조항을 배치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업과 맺은 계약서를 비밀에 묶어 두면 공적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공공 기관이나 자치 단체가 업체에 제공한 ‘혜택’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세금이 눈먼 돈이 된다. ‘혈세 먹는 하마’로 불리면서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는 제2순환도로가 대표적이다. ‘빛과 예술의 테마 파크 조성’이라는 애초 사업 목적과 달리 골프장만 짓고 만 ‘어등산 관광단지 조성 사업’도 마찬가지다. 어김없이 해당 업체와 협약 내용에는 정보 누설을 금하는 ‘보안 의무’가 포함돼 있다. 어등산 사업을 들여다본 감사원은 “협약대로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를 강제하는 보완 조항이 필요했지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연하다. 협약서를 볼 수 있는 당사자는 관련 공무원과 업체뿐이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법도 있으나 마나

공공 기관이 사기업과 체결한 협약(계약) 문서에는 양측의 셈법이 담겨 있는데, 이는 기업에 일정 이윤을 보장하고 받은 공익의 질과 양을 따져 볼 수 있는 대차대조표이기도 하다. 한데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할 자치 단체가 ‘비밀 계약’을 남발하게 되면 사업의 대차대조표를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호해야 할 비밀에 대한 구체적 범위, 규정, 절차도 없이 계약 전체를 뭉뚱그려 비밀로 봉인하는 것은 밀실 행정이다. 공공 기관에서 비밀은 매우 제한적으로 분류되고 관리돼야 한다. 비밀 유지 조항이 들어간 문서에 무분별하게 사인하면 정보 접근권 차단은 물론 사업자의 탐욕까지 은폐하는 공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과 공익 제보를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투명 사회에서 ‘제도화한 은폐’는 공공의 적이다.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