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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烙印) 찍는 사회
[채희종 사회부장]
2019년 03월 06일(수) 00:00
“가슴을 베인 것처럼 눈물에 데인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괴롭다. 내가 사는 것인지 세상이 나를 버린 건지 하루가 일년처럼 길구나. 그 언제나 아침이 올까…” 조선 시대 노비의 삶을 다루며 2010년 방영된 KBS2 드라마 ‘추노’의 메인 OST로, 가수 임재범이 부른 ‘낙인’의 가사 중 일부이다. 쇠꼬챙이로 가슴을 지지는 듯한 고통스러운 하루하루, 천형처럼 지워지지 않는 노비라는 낙인,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고단한 삶이 절절히 전해지는 대목이다.

낙인은 애초 특정 문양의 쇠붙이(도장)를 불에 달구어 찍는 것을 의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가축이나 노예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 썼으며, 이후 범죄자나 도망한 노비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등 낙인의 용도는 더욱 다양해졌다. 현대에 와서는 특정 대상에게 부정적인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갖도록 하는 행위나 성향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됐다.

물리적인 측면만을 놓고 보더라도 낙인은 살이 타는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이후 생긴 마음의 상처는 한층 삶을 옥죄고 정신까지 파멸시킨다. 낙인은 찍히는 대상에게 사회적 혐오와 차별을 집중함은 물론 지속적인 공격을 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낙인의 또 다른 특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다는 점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다수가 소수에게, 강대국이 약소국에 낙인을 찍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폭력과 탄압의 형태로 표출된다. 더불어 낙인찍는 자는 낙인찍힌 자에 대한 지배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차별과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고, 낙인찍기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강화한다. 낙인찍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좀체 반성하지 않는 이유이다.

다수가 소수를 배척한 예로는 우리 사회의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신병에 대한 시선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정신병 환자를 범죄와 공포라는 단어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73년 시행된 모자보건법이다. 이 법은 정신병 등 비정상인 모든 것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 중 하나이다. 대통령이 정한 정신 질환자는 강제 불임 시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해 실제 보호시설 여성 9명에게 강제 불임 시술이 시행됐다. 이는 나치의 인종 차별 정책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국가 간 힘의 우열로 인해 생기는 낙인찍기는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다. 1923년 9월 발생한 일본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은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거나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 또는 폭동을 일으켰다 등 다양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지진으로 인한 일본 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그동안 불순한 존재로 낙인찍었던 조선인을 상대로 분노와 혐오를 유발해 수천 명을 학살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입증된 학살임에도 일본 우익들은 아직도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나아가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죄는커녕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인 참전이었다’며 지금껏 조선인에 대한 낙인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기득권 세력의 낙인찍기는 역사마저 거스른다. 전두환을 필두로 한 12·12쿠데타 세력이 법의 심판을 받았고, 5·18민주화운동은 법적·역사적 검증과 평가를 받아 민주화운동으로 승격됐다. 여기에 무려 40년간 정부와 사법 기관이 아홉 차례에 걸쳐 5·18은 북한군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검증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과 극우 세력은 여전히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내려와 일으킨 폭동이라며, 5·18에 대해 ‘폭도’ 또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대고 있다. 애초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낙인을 찍기만 하면 극우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의 한 귀퉁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인은 그 자체가 양심에 어긋난 행위라는 사실이야 역사 속에서 증명돼 왔지만 최근 5·18 낙인찍기로 재미를 본 이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일약 극우 세력의 황태자로 떠오른 자가 있는가 하면 나름 정치 권력을 얻은 자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사실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양심과 바꾼 서푼 짜리 권력을 거머쥔 세력들은 머지않아 국민들로부터 낙인을 받게 될 것이니까. 그 낙인의 문구가 어떻게 될지 기대되지 않는가.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