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반응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 하루 동안 전 세계에서 160만 건의 관련 트윗이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평양냉면’이 언급된 것은 10만 건이 넘었다. 미국 CNN과 일본 아사히 방송에서는 스튜디오에서 냉면을 만들어 진행자들이 시식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일찍이 우리나라 음식에 이 정도의 이목이 집중된 사례는 없었다. 전 세계 외신과 각종 SNS를 통해 전파된 평양냉면의 광고 효과는 지금까지 한식 세계화를 명목으로 벌였던 모든 홍보 활동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했다.
이처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최고의 화제는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수혜자는 전국에 있는 냉면집이다. 정상회담 이후 냉면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남북 경협 관련 주식들의 폭등이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면, 냉면을 찾는 군중의 심리는 ‘역사적 이벤트를 장식했던 음식을 먹고 싶다’는 보다 현실적인 욕구다. 아마도 올 여름 전국의 냉면집들은 사상 유례없는 매출을 올릴지도 모르겠다.
기대 이상이긴 해도 이 모든 결과는 치밀한 전략 덕분으로 분석된다. 우선 평양 옥류관의 냉면은 남북정상회담과 인연이 깊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각각 옥류관에서 오찬을 가졌다. 이번 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선보인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로 만든 민어해삼편수와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재배한 쌀로 만든 비빔밥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음식이라면, 두 차례 정상회담 모두 메뉴에 올랐던 옥류관 냉면은 그분들이 못다 이룬 과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를 구현한 방식은 의미를 더욱 극적으로 승화시켰다. 정상회담에서 만찬 음식은 주최 측에서 준비하는 것이 관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옥류관의 냉면을 요청했고 북한에서는 이를 수용했다. 냉면은 그 성격상 미리 만들어 둘 수 없는 음식이다. 육수와 고명은 미리 준비한다 치더라고 면만큼은 먹기 직전에 뽑아야 한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 제면기를 설치하고 옥류관 요리사들을 대기 시켰다. 만찬 시간에 맞춰 면을 뽑고 이를 평화의집으로 배달해서 식사를 제공하는 예행연습까지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번 만찬에서 제공된 냉면은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분단 이후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는 음식이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 냉면을 배달해서 먹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두 정상이 나란히 냉면을 먹는 역사적인 장면은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이벤트였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제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가 아니라 평양냉면’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다.
분단이 고착화된 지 65년이 흘렀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남과 북은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당장 만난다고 한들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이럴 때 돌파구가 필요하다. 음식은 동질감을 회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식을 먹어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최소한의 물꼬는 틀 수 있다.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 냉면이다.
냉면은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음식이다. 세계 각국에 다양한 국수가 존재하지만 냉면처럼 ‘차가운 국수’는 매우 드물다. 솜씨 있게 우려낸 고기 국물과 겨우내 맛이 든 동치미가 결합되어 메밀국수를 품은 음식이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고안된 지혜의 산물이다. 냉면의 질긴 생명력은 분단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북한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전통 음식이자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독재 국가에서 지도자가 선호하는 음식은 당연히 지도층과 대중들 속으로 전파된다. 북한 사회에서 옥류관이 갖는 위상이 이를 대변한다. 남한에서는 피란민들의 호구지책으로 시작해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 주는 음식으로 뿌리내렸다. 그런데 워낙에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다 보니 남한 대중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다. 냉면은 남한 사회에서 가장 열렬한 애호가를 거느린 대중음식이 되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나란히 냉면을 먹는 모습에 환호하고, 오늘도 냉면집에 긴 줄이 늘어서는 것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냉면이라는 음식이 가진 압축된 역사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 모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는 냉면이다.
지금까지의 냉면이 분단의 상징이었다면 앞으로의 냉면은 평화의 상징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종전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판문점은 더 이상 긴장과 갈등이 아닌 화합과 공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곳에 옥류관 분점을 비롯해 남한의 유명 냉면집들이 다 모였으면 좋겠다. 철책으로 두 동강 난 한반도가 냉면의 질긴 면발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이보다 극적인 반전이 또 어디에 있을까?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맛 칼럼니스트>
기대 이상이긴 해도 이 모든 결과는 치밀한 전략 덕분으로 분석된다. 우선 평양 옥류관의 냉면은 남북정상회담과 인연이 깊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각각 옥류관에서 오찬을 가졌다. 이번 정상회담 만찬 메뉴로 선보인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로 만든 민어해삼편수와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재배한 쌀로 만든 비빔밥이 두 전직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음식이라면, 두 차례 정상회담 모두 메뉴에 올랐던 옥류관 냉면은 그분들이 못다 이룬 과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번 만찬에서 제공된 냉면은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분단 이후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는 음식이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 냉면을 배달해서 먹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두 정상이 나란히 냉면을 먹는 역사적인 장면은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이벤트였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제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가 아니라 평양냉면’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다.
분단이 고착화된 지 65년이 흘렀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남과 북은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당장 만난다고 한들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산적해 있다. 이럴 때 돌파구가 필요하다. 음식은 동질감을 회복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식을 먹어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최소한의 물꼬는 틀 수 있다.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 냉면이다.
냉면은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음식이다. 세계 각국에 다양한 국수가 존재하지만 냉면처럼 ‘차가운 국수’는 매우 드물다. 솜씨 있게 우려낸 고기 국물과 겨우내 맛이 든 동치미가 결합되어 메밀국수를 품은 음식이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고안된 지혜의 산물이다. 냉면의 질긴 생명력은 분단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북한에서는 역사가 오래된 전통 음식이자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독재 국가에서 지도자가 선호하는 음식은 당연히 지도층과 대중들 속으로 전파된다. 북한 사회에서 옥류관이 갖는 위상이 이를 대변한다. 남한에서는 피란민들의 호구지책으로 시작해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 주는 음식으로 뿌리내렸다. 그런데 워낙에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다 보니 남한 대중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다. 냉면은 남한 사회에서 가장 열렬한 애호가를 거느린 대중음식이 되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나란히 냉면을 먹는 모습에 환호하고, 오늘도 냉면집에 긴 줄이 늘어서는 것은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냉면이라는 음식이 가진 압축된 역사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폭발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 모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는 냉면이다.
지금까지의 냉면이 분단의 상징이었다면 앞으로의 냉면은 평화의 상징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종전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판문점은 더 이상 긴장과 갈등이 아닌 화합과 공존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곳에 옥류관 분점을 비롯해 남한의 유명 냉면집들이 다 모였으면 좋겠다. 철책으로 두 동강 난 한반도가 냉면의 질긴 면발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이보다 극적인 반전이 또 어디에 있을까?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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