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새순이 돋고 꽃들이 다투어 피는 계절이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뿌리를 품고 있다가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생명을 밀어 올리는 자연의 기억력이 경이롭다. 그런데 봄 잔치가 화사할수록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이 때쯤이면 새순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들 때문이다.
4월과 함께 돌아오는 기억들로는 가깝게는 4.16 세월호 참사,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 4.3 항쟁의 진실 등이 있다. 여전히 그날의 일은 부분과 파편들의 이야기가 되어서 떠돌며 많은 것들이 어둠 속에 남겨져 있으니…. 이제는 닳고 낡아서 식상할 대로 식상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기어이 떠오르고 만다.
시인이 자연의 잔인함을 말하는 것이라면, 잔인한 기억으로 얼룩진 4월은 사람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잔인한 기억이란 누군가 잔인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기에 생기는 것이다. 이 잔인함의 바닥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이 잔인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에 속하는 소포클레스 (BC 497∼406)는 “오만은 폭군을 낳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그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에 썼다. 인간의 오만을 그리스어로 히브리스 (Hybris)라고 한다.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분수를 넘어서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오만의 흔한 모습이다. 그리스인들이 가장 경계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오만으로, 얼마나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신화다. 뛰어난 영웅마저도 신의 분노를 사서 멸망의 길을 가는 대부분의 경우가 오만함 때문이다. 제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오만이라는 병에 한번 걸리면 결국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잘 알려진 ‘오만한 인간’의 이야기가 오이디푸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이디푸스 왕’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예언 때문에 아주 어려서 버려졌고 다른 사람의 손에서 성장하는데 결국 이 무시무시한 예언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며 그 예언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 한 노인과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자 불같은 성질을 못 참고 노인을 죽이고 만다. 그 노인은 사실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친아버지였고 결국 친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어서 어머니와 결혼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결국 이 비참한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그는 “내가 눈을 뜨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소?” 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멀쩡한 두 눈을 두고도 오만에 휘둘려서 장님으로 살았으니 두 눈을 뜨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절절한 깨달음이었던가! 오이디푸스는 “두 발로도 걷고 네 발로도 걸으며 또한 세 발로도 걷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로 사람들을 괴롭히던 스핑크스를 굴복시킨 영웅이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오만의 유혹은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권력자로서 오이디푸스 왕 못지않게 오만의 극치를 보여 준 사람이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다. 그는 그리스 본토를 쳐들어갈 때 큰 풍랑이 일자 분노해서 그리스 해협에 죄를 묻고 채찍 300대를 치게 했다. 또 바다의 신을 결박하는 뜻으로 바다에 족쇄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 군에게 패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자 자신의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울부짖는다.
고전에서 가장 많이 보는 영웅과 통치자들의 치명적 결함이 오만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고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것이라는 의미다. 오만에 휘둘려서 눈이 멀게 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응징을 당한다. 그래서 오만에 대한 응징을 그리스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기며 ‘응징의 신’을 섬겼다.
오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자만심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행위가 바로 오만이다. 페르시아의 왕은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전쟁을 마치 놀이처럼 생각했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현명함과 탁월함을 과대하게 믿었기에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였다.
그렇다고 오만으로 몰락하는 사람이 소위 ‘잘나가는’ 사람만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오만의 유혹에 빠진다. 작은 성공이나 운 좋게 얻은 우연한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기대가 컸던 몇 사람들이 최근에 보여 준 충격적인 행태 또한 그들이 빠져 있는 오만의 깊이를 보여 준다. 그들은 오만과 함께 오는 것이 ‘응징의 신’이라는 것을 정녕 몰랐던 것인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절망적이고 불행한 오만은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이다. 1949년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평생 부서진 턱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다가 돌아가신 제주의 ‘무명천’ 할머니에게 한 나라의 국민이란 무슨 의미일까? 외출이라고는 병원 가는 일 외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던 이 할머니에게 세상이란 무엇이었을까? 감히 그 답이 무엇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고전에서 찾은 오만한 자에 대한 답을 마음에 깊이 새겨 담는다. “그대가 그대의 재앙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4월과 함께 돌아오는 기억들로는 가깝게는 4.16 세월호 참사,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 4.3 항쟁의 진실 등이 있다. 여전히 그날의 일은 부분과 파편들의 이야기가 되어서 떠돌며 많은 것들이 어둠 속에 남겨져 있으니…. 이제는 닳고 낡아서 식상할 대로 식상한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기어이 떠오르고 만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에 속하는 소포클레스 (BC 497∼406)는 “오만은 폭군을 낳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그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에 썼다. 인간의 오만을 그리스어로 히브리스 (Hybris)라고 한다.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분수를 넘어서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오만의 흔한 모습이다. 그리스인들이 가장 경계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오만으로, 얼마나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신화다. 뛰어난 영웅마저도 신의 분노를 사서 멸망의 길을 가는 대부분의 경우가 오만함 때문이다. 제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오만이라는 병에 한번 걸리면 결국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잘 알려진 ‘오만한 인간’의 이야기가 오이디푸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결국 이 비참한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그는 “내가 눈을 뜨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소?” 라고 절규하며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멀쩡한 두 눈을 두고도 오만에 휘둘려서 장님으로 살았으니 두 눈을 뜨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절절한 깨달음이었던가! 오이디푸스는 “두 발로도 걷고 네 발로도 걸으며 또한 세 발로도 걷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로 사람들을 괴롭히던 스핑크스를 굴복시킨 영웅이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오만의 유혹은 이겨 내지 못한 것이다.
권력자로서 오이디푸스 왕 못지않게 오만의 극치를 보여 준 사람이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다. 그는 그리스 본토를 쳐들어갈 때 큰 풍랑이 일자 분노해서 그리스 해협에 죄를 묻고 채찍 300대를 치게 했다. 또 바다의 신을 결박하는 뜻으로 바다에 족쇄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 군에게 패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자 자신의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울부짖는다.
고전에서 가장 많이 보는 영웅과 통치자들의 치명적 결함이 오만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고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것이라는 의미다. 오만에 휘둘려서 눈이 멀게 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응징을 당한다. 그래서 오만에 대한 응징을 그리스 사람들은 당연하게 여기며 ‘응징의 신’을 섬겼다.
오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자만심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행위가 바로 오만이다. 페르시아의 왕은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전쟁을 마치 놀이처럼 생각했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현명함과 탁월함을 과대하게 믿었기에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였다.
그렇다고 오만으로 몰락하는 사람이 소위 ‘잘나가는’ 사람만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오만의 유혹에 빠진다. 작은 성공이나 운 좋게 얻은 우연한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기대가 컸던 몇 사람들이 최근에 보여 준 충격적인 행태 또한 그들이 빠져 있는 오만의 깊이를 보여 준다. 그들은 오만과 함께 오는 것이 ‘응징의 신’이라는 것을 정녕 몰랐던 것인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절망적이고 불행한 오만은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이다. 1949년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평생 부서진 턱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다가 돌아가신 제주의 ‘무명천’ 할머니에게 한 나라의 국민이란 무슨 의미일까? 외출이라고는 병원 가는 일 외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던 이 할머니에게 세상이란 무엇이었을까? 감히 그 답이 무엇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다만 고전에서 찾은 오만한 자에 대한 답을 마음에 깊이 새겨 담는다. “그대가 그대의 재앙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