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한 자락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 멀리 떼어 버리고 나와 제월봉 되었거늘/ 끝없이 넓은 벌판에 무슨 생각 하느라고/ 일곱 굽이 한 곳에 움츠려 무더기무더기 벌여 놓은 듯”
천고에 유명한 ‘면앙정가’의 첫 들머리 대목이다. 가사문학이라면 흔히 송강 정철을 꼽지만 송강의 스승은 바로 면앙정 송순(宋純 : 1493∼1583)이다. 그래서 송순의 ‘면앙정가’를 읊어 보면 자연스럽게 송강의 가사는 스승의 작품 면앙정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라고 여기게 된다. 제자가 스승에게서 배우고 본받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 조선 시대의 가사문학의 원조는 역시 호남 출신 송순임을 알게 되고, 그의 뛰어난 언어 구사력은 조선의 가사문학이 그렇게 격조 높았음을 알게 해 준다.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어머니 무등산은 원효계곡의 굽이굽이에 수많은 정자(亭子)의 풍류를 창조하였고, 그런 풍류가 맺어져 ‘면앙정가’라는 가사가 탄생하였다. 조선 시대 가사문학의 최고 수준이 그런 계곡에서 발전된 것이다. 16세기 사림문화와 가사문학이 함께 발전하면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는 의병의 의혼으로 승화하여 호남 정신의 큰 맥을 형성하기도 했다.
원효계곡의 사림문화와 가사문학의 좌장은 역시 송순이었다. 송순은 담양 출신으로 호는 면앙정 또는 기촌(企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개성유수·이조참판·대사헌·우참찬 등의 고관을 지내 나라 안에 이름이 가득하였다. 글 잘하고 가사문학에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김인후·노진·박순·기대승·고경명·정철·임제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문인들이라면 스승의 학덕을 짐작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1533년 김안로가 권세를 부리자 깨끗한 선비이자 벼슬아치이던 송순은 벼슬을 버렸다. 그리고 고향인 담양으로 낙향하여 ‘면앙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시와 가사를 읊고 가야금을 타며 풍류를 즐겼다. 김안로가 사약을 받고 죽자, 벼슬길이 열린 송순은 홍문관 부제학, 충청도 암행어사, 승정원 우부승지, 경상도 관찰사, 사간원 대사간, 전라도 관찰사, 전주부윤, 나주목사 등 온갖 요직의 벼슬을 살았다. 70이 넘어서도 한성판윤 등의 고관에 올라 청백리로서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면앙정! 아름다운 정자로 학문이 있고 시가 있으며 가사와 가야금이 있던 곳이다. 학자 기대승이 ‘면앙정기’를 짓고 임제가 부(賦)를 지었으며, 김인후·임억령·박순·고경명·정철 등이 찬양의 시를 지었다. 이만한 인물들의 시와 글이 있는 정자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갑오년(1894) 무렵, 보성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해배 명령으로 귀향하던 한말의 대문호 영재 이건창(1852∼1898)은 면앙정에 올랐는데 흥을 이기지 못해 시 한 수를 읊었다.
“송공의 명덕(明德)을 생각게 해 주니/ 향국(鄕國)의 풍류가 한 시대에 풍성했네/ 정자는 의연하게 강 위에 있구나/ 가마꾼 그런 분들이야 세상에 뛰어난 분들/ 산빛은 멀고 멀어 물은 천 굽이로 꺾이고/ 들에 비친 그림자 질펀하여 사방으로 하늘 드리웠네/ 쳐다보고 굽어보다 부질없이 서글퍼짐은/ 오늘 누가 내 가마 메 주고 나는 또 누굴 메 줄꼬” 조선의 시인·대문장가인 이건창답게 이 한 편의 시는 면앙정에 관한 모든 시에서 가장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에는 또 긴긴 사연이 있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한 송순은 벼슬에서 물러난 87세 때인 1579년 과거급제 60주년을 맞는 ‘회방’(回榜)의 잔치를 열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잔치인가. 잔치는 천하의 절경인 면앙정에서 열렸다. 소식을 들은 임금은 호조에 명하여 선물을 보냈고, 전라도 관찰사와 이웃 고을의 군수·목사·현감·부사·현령 등 100여 명이 모이고 제자와 친지 등 많은 인파가 모인 큰 잔치였다. 87세의 극노인이 정자에서 내려올 때, 제자인 박순·정철·이후백·임제 등 4명이 가마를 메고 스승을 태우고 내려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송순이 타계한 뒤 215년째이던 정조22년(1798)에 전라도에 도과(道科)를 실시했는데, 글 제목이 ‘하여면앙정’(면앙정에서 가마를 메었던 일)이었다. 면앙정의 사연은 그렇게 멋지다. 이런 정자의 내력을 오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면앙정은 정말 국보급의 정자다. 그래서 이건창은 시에서 가마꾼들이 세상에 이름 높았으며, 그런 분들 누가 오늘 자신의 가마를 메어 줄까를 한탄했던 것이다. 호남의 문화유산, 면앙정을 이제라도 더 아름답게 여기고 우러러 보자.
천고에 유명한 ‘면앙정가’의 첫 들머리 대목이다. 가사문학이라면 흔히 송강 정철을 꼽지만 송강의 스승은 바로 면앙정 송순(宋純 : 1493∼1583)이다. 그래서 송순의 ‘면앙정가’를 읊어 보면 자연스럽게 송강의 가사는 스승의 작품 면앙정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라고 여기게 된다. 제자가 스승에게서 배우고 본받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 조선 시대의 가사문학의 원조는 역시 호남 출신 송순임을 알게 되고, 그의 뛰어난 언어 구사력은 조선의 가사문학이 그렇게 격조 높았음을 알게 해 준다.
원효계곡의 사림문화와 가사문학의 좌장은 역시 송순이었다. 송순은 담양 출신으로 호는 면앙정 또는 기촌(企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개성유수·이조참판·대사헌·우참찬 등의 고관을 지내 나라 안에 이름이 가득하였다. 글 잘하고 가사문학에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김인후·노진·박순·기대승·고경명·정철·임제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문인들이라면 스승의 학덕을 짐작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면앙정! 아름다운 정자로 학문이 있고 시가 있으며 가사와 가야금이 있던 곳이다. 학자 기대승이 ‘면앙정기’를 짓고 임제가 부(賦)를 지었으며, 김인후·임억령·박순·고경명·정철 등이 찬양의 시를 지었다. 이만한 인물들의 시와 글이 있는 정자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갑오년(1894) 무렵, 보성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해배 명령으로 귀향하던 한말의 대문호 영재 이건창(1852∼1898)은 면앙정에 올랐는데 흥을 이기지 못해 시 한 수를 읊었다.
“송공의 명덕(明德)을 생각게 해 주니/ 향국(鄕國)의 풍류가 한 시대에 풍성했네/ 정자는 의연하게 강 위에 있구나/ 가마꾼 그런 분들이야 세상에 뛰어난 분들/ 산빛은 멀고 멀어 물은 천 굽이로 꺾이고/ 들에 비친 그림자 질펀하여 사방으로 하늘 드리웠네/ 쳐다보고 굽어보다 부질없이 서글퍼짐은/ 오늘 누가 내 가마 메 주고 나는 또 누굴 메 줄꼬” 조선의 시인·대문장가인 이건창답게 이 한 편의 시는 면앙정에 관한 모든 시에서 가장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에는 또 긴긴 사연이 있다. 27세에 문과에 급제한 송순은 벼슬에서 물러난 87세 때인 1579년 과거급제 60주년을 맞는 ‘회방’(回榜)의 잔치를 열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잔치인가. 잔치는 천하의 절경인 면앙정에서 열렸다. 소식을 들은 임금은 호조에 명하여 선물을 보냈고, 전라도 관찰사와 이웃 고을의 군수·목사·현감·부사·현령 등 100여 명이 모이고 제자와 친지 등 많은 인파가 모인 큰 잔치였다. 87세의 극노인이 정자에서 내려올 때, 제자인 박순·정철·이후백·임제 등 4명이 가마를 메고 스승을 태우고 내려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송순이 타계한 뒤 215년째이던 정조22년(1798)에 전라도에 도과(道科)를 실시했는데, 글 제목이 ‘하여면앙정’(면앙정에서 가마를 메었던 일)이었다. 면앙정의 사연은 그렇게 멋지다. 이런 정자의 내력을 오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면앙정은 정말 국보급의 정자다. 그래서 이건창은 시에서 가마꾼들이 세상에 이름 높았으며, 그런 분들 누가 오늘 자신의 가마를 메어 줄까를 한탄했던 것이다. 호남의 문화유산, 면앙정을 이제라도 더 아름답게 여기고 우러러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