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괴물’은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다. 크레타 왕비의 부정으로 생겨난 미노타우로스는 반은 사람, 반은 황소의 형상을 한 괴물이다. 크레타의 왕은 이 괴물을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미궁 안에 가두고 아테네의 젊은 남녀를 공물로 받쳤다. 사람을 잡아먹고 거대해진 괴물은 갈수록 난폭해져서 그 횡포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괴물은 더 큰 희생을 막으려는 아테네의 영웅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로 속의 괴물보다 더 끔찍한 괴물들이 우리 곁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얼굴과 이름으로 버젓이 함께 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더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 온갖 권력과 명예와 영광을 누리고 ‘어른’으로 대접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자’, ‘원로’, ‘거물’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수식되면서 말이다. 이들이 미궁 속에서 사람 공양을 받던 그 끔찍한 미노타우로스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괴물들의 끔찍한 실체를 한 작가의 증언을 통해 다시 새긴다.
프리모 레비(1919-1987)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과학자인 그가 겪은 괴물은 독일의 나치라고 불리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나치에 의해서 포로수용소 중 가장 잔혹한 ‘아우슈비츠’에 보내졌다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았기에 어쩌면 더 잔인한 운명을 견뎌야 하는 ‘생존자’가 되었다.
그는 생존자의 책무를 포로수용소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른 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그러나 버젓이 세상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겪은 일들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고 인간 모두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세상에 괴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해도 권력이 비대해지고 기만과 억압 체계가 교묘하게 작동되는 곳에는 어디나 ‘포로수용소’가 세워지고 누구나 포로가 될 수 있다. 자유를 내걸고 당당한 ‘주인의 삶’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이웃에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수용소가 세워지고 사람을 공물로 요구하는 미노타우로스가 살을 찌우고 있었던 셈이다.
레비는 자신의 참혹한 경험을 증언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단순히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거나 공감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기 위해서다. 이것이 인간인가? 레비의 처절한 이 물음은 같은 고통을 직접 겪었든 겪지 않았든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궁극의 문제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이것이 인간일 수는 없다고. 이 답에 담긴 인간에 대한 작고 작은 희망은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삶에의 의지가 되었고, 수용소 안의 삶을 견디게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흑의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아무리 괴물이 거대해도 인간을 결코 동물이나 사물로 만들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인간인가? 하는 물음은 괴물의 힘 앞에서도 끝까지 ‘인간이고자’ 하며, 인간의 파괴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증언이다.
레비는 인간이고자 함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 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괴물을 향했던 역겨움과 끔찍함이 우리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인간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괴물과 그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가?
이제 막 우리 사회의 괴물들이 어떻게 제물을 강요하고 인간을 사물로 대했는가에 대해 증언이 시작되었다. 두렵도록 용기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이 증언들이 혹시 불편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침묵과 무관심을 넘어서 심지어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괴물은 혼자서 만들어지거나 군림하지 못한다. 미노타우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깊은 미궁에 감춰서 키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니 괴물에게 있다는 그 잘난 능력과 탁월함에 현혹되어서 심지어 권위라는 왕관까지 씌웠던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괴물인줄 몰랐다고, 왜 그 때 바로 말하지 않았냐고. 레비가 답한다. “저항이 부족했다고 포로들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엘리트만 가지고 있는 정치의식을 포로들에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당시에 저항하지 않았냐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알량하게 숨겨진 우월의식의 표현일 뿐이다. 인간이고자 한다면 괴물을 거부하는 것이 도리다. 그리고 증언의 고통 속에서 다시 한 번 ‘지옥’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1919-1987)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과학자인 그가 겪은 괴물은 독일의 나치라고 불리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나치에 의해서 포로수용소 중 가장 잔혹한 ‘아우슈비츠’에 보내졌다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았기에 어쩌면 더 잔인한 운명을 견뎌야 하는 ‘생존자’가 되었다.
그는 인간의 세상에 괴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을 용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해도 권력이 비대해지고 기만과 억압 체계가 교묘하게 작동되는 곳에는 어디나 ‘포로수용소’가 세워지고 누구나 포로가 될 수 있다. 자유를 내걸고 당당한 ‘주인의 삶’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이웃에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수용소가 세워지고 사람을 공물로 요구하는 미노타우로스가 살을 찌우고 있었던 셈이다.
레비는 자신의 참혹한 경험을 증언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단순히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거나 공감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기 위해서다. 이것이 인간인가? 레비의 처절한 이 물음은 같은 고통을 직접 겪었든 겪지 않았든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궁극의 문제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이것이 인간일 수는 없다고. 이 답에 담긴 인간에 대한 작고 작은 희망은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삶에의 의지가 되었고, 수용소 안의 삶을 견디게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흑의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아무리 괴물이 거대해도 인간을 결코 동물이나 사물로 만들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인간인가? 하는 물음은 괴물의 힘 앞에서도 끝까지 ‘인간이고자’ 하며, 인간의 파괴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증언이다.
레비는 인간이고자 함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 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괴물을 향했던 역겨움과 끔찍함이 우리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인간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괴물과 그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가?
이제 막 우리 사회의 괴물들이 어떻게 제물을 강요하고 인간을 사물로 대했는가에 대해 증언이 시작되었다. 두렵도록 용기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이 증언들이 혹시 불편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침묵과 무관심을 넘어서 심지어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괴물은 혼자서 만들어지거나 군림하지 못한다. 미노타우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깊은 미궁에 감춰서 키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니 괴물에게 있다는 그 잘난 능력과 탁월함에 현혹되어서 심지어 권위라는 왕관까지 씌웠던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괴물인줄 몰랐다고, 왜 그 때 바로 말하지 않았냐고. 레비가 답한다. “저항이 부족했다고 포로들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엘리트만 가지고 있는 정치의식을 포로들에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당시에 저항하지 않았냐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알량하게 숨겨진 우월의식의 표현일 뿐이다. 인간이고자 한다면 괴물을 거부하는 것이 도리다. 그리고 증언의 고통 속에서 다시 한 번 ‘지옥’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