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폴리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자] <3> 푸른길 공원
폐선부지에 숲·폴리 접속 … 공동체 문화 꽃 피웠다
![]() 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는 푸른길 전경. |
“폐선부지는 빈 땅이 아니라 광주에 남아 있는 근대 유적이다. 철길이라기 보다는 연속되는 풍경이고, 경계와 단절 보다는 연결과 접속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때문에 선이라기 보다는 이어진 면이나, 폐기될 길이 아니라 새롭게 열어 줄 미래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사용하기 전에 다시 한번 다양한 시각으로 되돌아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의 땅이다.”
〈정기용의 ‘근대 유적, 질문의 땅’ 중에서〉
지난 2001년 10월, 제4회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4 ‘접속’의 큐레이터로 남광주 역사 구간을 둘러 보던 정기용(1945∼2011·건축가)의 표정은 거대한 캔버스를 마주한 예술가였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칙칙했던 ‘과거의 공간’은 예술적 상상력이 숨쉬는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육중한 기차의 무게와 온갖 세파를 견뎌온 침목은 광주민중화 운동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탄생(정현 작 ‘일어서는 침목’)했고, 수산물 집하장인 남광주 시장은 시민들의 문화플랫폼(공성순 작 ‘남광주 부두’)으로 변신했다. 아드리안 게즈, 김영준, 류영국 등 국내외 작가 20여 명이 참여한 비엔날레 프로젝트는 폐선부지를 시민들의 일상과 ‘접속’시킨 예술적 씨앗이 됐다.
사실 기차가 끊긴 폐선부지는 광주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해왔다. 지난 1930년 12월 25일 개통된 광주∼여수간 철도의 일부 구간인 이곳은 광주와 화순, 보성, 여수를 연결하는 교통망 역할을 했다. 학생들에게는 통학 열차였고 남광주 상인들에게는 생계를 잇게 해준 물류 수단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소음과 공해, 나아가 도심의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폐선부지가 2002 광주비엔날레의 테마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시민들의 힘이 컸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시공간의 변화를 이끈 동력은 관(官)이었다. 도시가 지닌 복합적인 문제를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데 익숙했던 광주시는 폐선부지를 경전철로 사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엔날레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민들은 관 주도의 획일적인 도시계획에 맞서 나무와 문화가 흐르는 푸른길 만들기에 뜻을 모았다. 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활용된 폐선부지 10.8km에 설치할 작품의 형태와 공간을 둘러싸고 큐레이터와 시민,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눴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폐막 이후 광주시는 시민과 환경단체,예술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철거 대신 녹지로 조성하는 ‘푸른길 공원조성 방안’을 내놓았다. 폐선부지 구간 10.8km 가운데 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광주 북구 중흥동 광주역에서 부터 남구 진월동 동성중의 구간 7.9㎞. 면적으로 환산하면 3만 여평(9만9127㎡)에 이르는 규모다.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아 온 푸른길 공원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공동체 문화를 꽃피웠다. 자생적인 민간조직인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현 사단법인 푸른길)는 시민과 철로 주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주민참여형 시민운동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냈다. 특히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가 주도한 ‘푸른길 100만그루 헌수운동’은 푸른길 공원의 새 장을 여는 기폭제가 됐다.
또한 2002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4의 무대였던 옛 남광주 역사(남광주 푸른길 공원)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거점공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매주 정기적으로 열린 푸른길 별별장터, 푸른길 음악회, 푸른길 대화 한마당이 대표적인 행사. 철도청에서 기증받은 기차 2량은 도서관과 커뮤니센터로 활용되는 등 푸른길 공원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뭐니뭐니해도 푸른길 공원에 날개를 달게 해준 건 1차 광주폴리다.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이었던 승효상 건축가는 특별프로젝트로 옛 광주읍성터에 거장들의 건축조형물 10개를 설치하면서 도심과 가까운 푸른길 공원에도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 승 감독은 당시 건축가, 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광주 동구 동명동 서석교회∼남광주시장까지 1km 구간을 현장답사하며 밑그림을 그렸다. 승 감독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볼 수 있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점을 선정할 계획”이라며 “기능적인 시설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곳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푸른길 공원의 폴리 작품을 디자인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승 감독의 ‘낙점’을 받은 곳은 바로 푸른길 농장다리. ‘농장다리’라는 이름은 지난 1960년대 인근에 있었던 광주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농장사역을 하기 위해 이 곳을 건너게 된 데에서 유래됐다. 그는 광주읍성터에 들어선 10개의 폴리가 장식적인 기능에 치중했다는 쓴소리를 의식해서인지 농장다리에서 동네로 내려가는 계단과 다리 밑 공간을 무대로 한 ‘푸른길 문화샘터’ 를 선보였다. 푸른길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전파하는 오아시스로 꾸미기 위해서다.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 하기 위해 그는 관리가 용이한 내후성 강판으로 제작했고 농장다리와 푸른길을 연결하는 계단을 객석과 쉼터로 디자인했다.
푸른길 공원에서 만난 주민 정성헌(62·광주시 동구 지산동)씨는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방치된 폐선부지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고 싶어하는 주민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나무와 숲이 어우러지고 폴리와 같은 예술작품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푸른길과 광주폴리와의 조합은 근래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과 시민단체, 공무원들 사이에 도심재생 모델의 견학코스로 떠올랐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3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주민과 함께 밝고 환하게 웃는 동네 만들기 사업’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지난 2001년 10월, 제4회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4 ‘접속’의 큐레이터로 남광주 역사 구간을 둘러 보던 정기용(1945∼2011·건축가)의 표정은 거대한 캔버스를 마주한 예술가였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칙칙했던 ‘과거의 공간’은 예술적 상상력이 숨쉬는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육중한 기차의 무게와 온갖 세파를 견뎌온 침목은 광주민중화 운동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탄생(정현 작 ‘일어서는 침목’)했고, 수산물 집하장인 남광주 시장은 시민들의 문화플랫폼(공성순 작 ‘남광주 부두’)으로 변신했다. 아드리안 게즈, 김영준, 류영국 등 국내외 작가 20여 명이 참여한 비엔날레 프로젝트는 폐선부지를 시민들의 일상과 ‘접속’시킨 예술적 씨앗이 됐다.
폐선부지가 2002 광주비엔날레의 테마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시민들의 힘이 컸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시공간의 변화를 이끈 동력은 관(官)이었다. 도시가 지닌 복합적인 문제를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데 익숙했던 광주시는 폐선부지를 경전철로 사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엔날레 프로젝트를 계기로 시민들은 관 주도의 획일적인 도시계획에 맞서 나무와 문화가 흐르는 푸른길 만들기에 뜻을 모았다. 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활용된 폐선부지 10.8km에 설치할 작품의 형태와 공간을 둘러싸고 큐레이터와 시민,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눴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폐막 이후 광주시는 시민과 환경단체,예술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철거 대신 녹지로 조성하는 ‘푸른길 공원조성 방안’을 내놓았다. 폐선부지 구간 10.8km 가운데 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광주 북구 중흥동 광주역에서 부터 남구 진월동 동성중의 구간 7.9㎞. 면적으로 환산하면 3만 여평(9만9127㎡)에 이르는 규모다.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아 온 푸른길 공원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공동체 문화를 꽃피웠다. 자생적인 민간조직인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현 사단법인 푸른길)는 시민과 철로 주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주민참여형 시민운동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냈다. 특히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가 주도한 ‘푸른길 100만그루 헌수운동’은 푸른길 공원의 새 장을 여는 기폭제가 됐다.
또한 2002 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 4의 무대였던 옛 남광주 역사(남광주 푸른길 공원)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거점공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매주 정기적으로 열린 푸른길 별별장터, 푸른길 음악회, 푸른길 대화 한마당이 대표적인 행사. 철도청에서 기증받은 기차 2량은 도서관과 커뮤니센터로 활용되는 등 푸른길 공원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뭐니뭐니해도 푸른길 공원에 날개를 달게 해준 건 1차 광주폴리다.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이었던 승효상 건축가는 특별프로젝트로 옛 광주읍성터에 거장들의 건축조형물 10개를 설치하면서 도심과 가까운 푸른길 공원에도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 승 감독은 당시 건축가, 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광주 동구 동명동 서석교회∼남광주시장까지 1km 구간을 현장답사하며 밑그림을 그렸다. 승 감독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볼 수 있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점을 선정할 계획”이라며 “기능적인 시설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곳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푸른길 공원의 폴리 작품을 디자인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승 감독의 ‘낙점’을 받은 곳은 바로 푸른길 농장다리. ‘농장다리’라는 이름은 지난 1960년대 인근에 있었던 광주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농장사역을 하기 위해 이 곳을 건너게 된 데에서 유래됐다. 그는 광주읍성터에 들어선 10개의 폴리가 장식적인 기능에 치중했다는 쓴소리를 의식해서인지 농장다리에서 동네로 내려가는 계단과 다리 밑 공간을 무대로 한 ‘푸른길 문화샘터’ 를 선보였다. 푸른길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전파하는 오아시스로 꾸미기 위해서다.
자신의 구상을 현실화 하기 위해 그는 관리가 용이한 내후성 강판으로 제작했고 농장다리와 푸른길을 연결하는 계단을 객석과 쉼터로 디자인했다.
푸른길 공원에서 만난 주민 정성헌(62·광주시 동구 지산동)씨는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방치된 폐선부지로 인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고 싶어하는 주민들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나무와 숲이 어우러지고 폴리와 같은 예술작품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푸른길과 광주폴리와의 조합은 근래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과 시민단체, 공무원들 사이에 도심재생 모델의 견학코스로 떠올랐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3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주민과 함께 밝고 환하게 웃는 동네 만들기 사업’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