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춘섭아’라는 독립 영화를 보았다. 중흥동을 배경으로 2017년도에 제작된 마을 영화이다. 이 영화에 어머니가 배우로 출연해서 재미와 감동이 더 컸다. 전체 출연 배우 중에 78세로 최고령이다. 작년에 배우 오디션을 보셨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돌아보면 놀랄 일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고향을 떠난 뒤로 어머니는 오히려 더 바빠지셨다.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으셨다. 하모니카를 배우고, 합창반에 나가고,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등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뇌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퇴화한다는 게 상식이다. 심한 경우 치매로 고생한다. 치매는 65세에서 대략 10명 중 1명꼴로 발병하며 이후 5년 마다 2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노인 분들도 많다. 사실 이분들은 의학의 연구 대상이 아니었다. 의학은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인지 신경학 팀은 달랐다. 이들은 노인들 중에서도 나이에 비해 젊은 뇌를 지니고 있는 이들을 연구했다. 성공적인 노화의 비결을 찾고 싶은 것이었다. 이 팀은 신경 인지 기능 검사를 통해 연령대에 비해 20∼30년 젊은 인지 기능을 가진 80∼90세의 노인들을 60여 명 선발했다.

연구 팀은 이들을 ‘슈퍼 에이저’(Super-ager)라고 이름 붙이고, 2007년도부터 이들의 뇌와 생활 방식을 연구해 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슈퍼 에이저들의 뇌는 세 가지 면에서 달랐다.

첫째, 동일 연령대의 노인들에 비해 기억력과 연관된 대뇌피질과 해마의 신경세포 손실률이 2배가량 적었다. 둘째, 눈치와 직관과 관련된 사회성 신경세포라고 할 수 있는 ‘폰 에코노모 뉴런’(Von Economo Neuron)이 동일 연령대보다 다섯 배 많았다. 셋째, 대상피질(cingulate cortex)의 앞쪽이 또래는 물론 30살 연하의 중년보다 더 두꺼웠다. 대상피질은 대뇌피질과 변연계 사이에 놓여 있는 부위로 자기 조절과 주의력 등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즉, 슈퍼 에이저들은 단지 기억력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회성과 자기 조절력의 뇌 영역이 더 뛰어났다. 이들의 두뇌 특징은 생활 방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슈퍼 에이저들은 다음과 같은 생활상의 공통점이 관찰되었다.

첫째, 스트레스를 피하지 않고 난이도가 있는 활동에 뛰어든다는 점이다. 이들은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학습, 악기 연주, 춤 배우기, 봉사 활동 등 난이도가 있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둘째, 이들은 나이 들어 대인 관계가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취미와 봉사 등 자신의 관심사에 맞게 다양하고 폭넓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셋째, 이들은 아래 세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아래 세대들에게 배우려고 하고 그들의 관심사를 알려고 하며 함께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한 번씩 무언가 깜박 잊을 때면 치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신다. 그러나 노스웨스턴 대학의 슈퍼 에이저 연구를 보면 어머니의 걱정은 기우일 듯싶다.

정작 치매를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경험을 피하고,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고 있는 이들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이 듦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어머니처럼 나이 들어 가면 되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