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달빛 책방에 간다. 친구들과 모여 함께 읽기로 한 책의 밑줄 친 구절들을 서로에게 읽어 준다. 다른 이는 어디에 마음이 닿았는지, 왜 그 문장 앞에서 흔들렸는지, 어떤 단어들과 마주했는지를 듣는다. 뜻하지 않은 섬세한 감각으로 타인의 마음자리에 새겨진 삶의 결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밑줄 그은 부분이 같아서 반가울 때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갔던 글귀가 친구들의 이야기와 만나 새롭게 안겨 오기도 한다. 하루치 노동을 끝내고 모이는 밤이라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배부른 시간이다.
“그냥 읽어 오기만 하면 됩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구절에 밑줄을 쳐 오세요. 모임은 여러분이 밑줄 친 구절을 함께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지난여름 셋이서 시작한 책 모임이 어느덧 여덟 명으로 늘었다. 결이 다른 책들을 함께 읽었고 느슨하지만 따뜻하게 책으로 연결되었다. 그사이 군에 입대한 친구도, 큰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간 친구도, 엄마가 된 친구도 있다. 모두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낸다. 우리의 삶과 마음은 늘 상반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때로는 무기력하고 슬픔 앞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난 책과 그 너머의 이야기가 삶의 동력과 위로가 되어 준다는 걸 알아 버렸다고나 할까.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이렇게 묻는 분들에게 나는 저마다의 독서 모임을 권한다. 독서 모임은 구성원들이 공통된 책을 읽고 만나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상처와 실패를 이야기하며 자기를 깊이 이해하는 공간이고, 타인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이며, 치유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해 보면 안다. 모두들 지나온 힘든 시간들을 위로받고 그럼에도 잘 해 왔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 모든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것을.
독서 모임이라는 ‘둥글고 고요한 공간’(김형경)이 유익한 기능을 할 수 있으려면 염두에 두어야 할 몇 가지 실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책을 읽을 때, 모임에서 이야기할 때,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기 성찰 능력이다. 책을 읽으며 “아, 이게 모두 내 이야기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태도, 독서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자기 내면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에도 공감하기 어렵다. 공감 능력은 그러므로 자기 성찰 역량과 비례한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저마다 생의 한 시기를 특별하게 보내는 듯하다. 일과를 처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읽는 행위도 강도 높은 노동이라 신체적 고통이 따르지만 누가 시켜서 모이는 것이 아니다. 삶에 유익하고 배울 만한 것이 있다고 느끼면 참여하고, 공연한 시간 낭비로 느껴진다면 오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마라 통제받는 일에 익숙한 삶에서 자율성을 획득하는 일은 그 자체로 기쁨을 안겨 준다.
또 하나, 모임에서 경험을 털어놓고 나면 그다지 부끄러울 것 없는 일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자아가 보다 견고해질 때까지 비밀 유지는 중요한 조건이다. 누군가 처음으로 가장 아픈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고, 지지하는 태도를 경험하면 그런 이야기를 해도 안전하며 이야기와 함께 고통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 독서 모임은 그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독서 모임은 타인의 경험에서 배우는 공간이다. “나는 불안해서 멈춘 일 앞에서 저 친구는 스스럼없이 발을 내딛는구나. 저렇게 별일이 아니구나.” “저 친구가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은 저렇구나. 나랑 다르지만 저 방식이 나아 보이는구나”하는 것. 타인이 건네는 지혜나 통찰을 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누구나의 삶만큼 풍요로운 도서관은 없다.
책의 한 귀퉁이를 접어 두는 것을 뜻하는 ’도그지어’(dog’s ear)’라는 말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도그지어라는 건 개의 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문자를, 그리고 문자로 표현되는 세계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예의 바른 행동이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그 순간을 그렇게 접어 놓는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접어 놓은 삼각형들을 책임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 번쯤 이렇게 세상의 한 귀퉁이를 접어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아 보아도 좋겠다. 접어 둔 이야기에 마음 기울여 줄 친구를 찾아 나서는 용기를 낸다면 누군가는 그에 응답할 테니까 말이다. 인생의 벗들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이렇게 묻는 분들에게 나는 저마다의 독서 모임을 권한다. 독서 모임은 구성원들이 공통된 책을 읽고 만나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상처와 실패를 이야기하며 자기를 깊이 이해하는 공간이고, 타인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이며, 치유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해 보면 안다. 모두들 지나온 힘든 시간들을 위로받고 그럼에도 잘 해 왔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 모든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것을.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저마다 생의 한 시기를 특별하게 보내는 듯하다. 일과를 처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읽는 행위도 강도 높은 노동이라 신체적 고통이 따르지만 누가 시켜서 모이는 것이 아니다. 삶에 유익하고 배울 만한 것이 있다고 느끼면 참여하고, 공연한 시간 낭비로 느껴진다면 오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마라 통제받는 일에 익숙한 삶에서 자율성을 획득하는 일은 그 자체로 기쁨을 안겨 준다.
또 하나, 모임에서 경험을 털어놓고 나면 그다지 부끄러울 것 없는 일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자아가 보다 견고해질 때까지 비밀 유지는 중요한 조건이다. 누군가 처음으로 가장 아픈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이야기에 대해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고, 지지하는 태도를 경험하면 그런 이야기를 해도 안전하며 이야기와 함께 고통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 독서 모임은 그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독서 모임은 타인의 경험에서 배우는 공간이다. “나는 불안해서 멈춘 일 앞에서 저 친구는 스스럼없이 발을 내딛는구나. 저렇게 별일이 아니구나.” “저 친구가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은 저렇구나. 나랑 다르지만 저 방식이 나아 보이는구나”하는 것. 타인이 건네는 지혜나 통찰을 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우리의 삶은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누구나의 삶만큼 풍요로운 도서관은 없다.
책의 한 귀퉁이를 접어 두는 것을 뜻하는 ’도그지어’(dog’s ear)’라는 말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도그지어라는 건 개의 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문자를, 그리고 문자로 표현되는 세계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예의 바른 행동이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그 순간을 그렇게 접어 놓는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접어 놓은 삼각형들을 책임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 번쯤 이렇게 세상의 한 귀퉁이를 접어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아 보아도 좋겠다. 접어 둔 이야기에 마음 기울여 줄 친구를 찾아 나서는 용기를 낸다면 누군가는 그에 응답할 테니까 말이다. 인생의 벗들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