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 다녀왔다. 창사는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도시였다. 그곳에는 마오가 청소년기를 보낸 학교가 있었다. 창사(長沙)를 가로지르는 샹쟝(湘江) 가운데 떠 있는 섬, 주쯔저우(橘子洲)에는 거대한 마오의 흉상이 우뚝하다. 곳곳에 마오의 기념물이 있었다.
창사에서 약간 떨어진 사오산(韶山)에 있는 마오의 옛집을 찾았다. 마오의 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곳에서 창사 쪽으로 20km, 차량으로 40분가량을 가면 류사오치(劉少奇, 1898∼1969)의 옛집이 나온다(닝샹, 寧鄕). 류사오치는 마오와 함께 신중국 건설의 주역이었다. 류는 마오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주석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은 동향(同鄕)의 동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운명은 충돌했다. 1958년에 시작된 마오의 대약진운동이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 책임으로 마오는 한발 물러났다. 실권을 장악한 류사오치는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 등과 함께 경제 건설에 나섰다. 마오는 반격을 꾀했다. ‘계급투쟁’과 ‘백화제방’을 명분으로 이념 투쟁을 부추기고, 청소년들을 동원해 류사오치 등을 공격하게 했다. 1966년에 시작된, 이른바 ‘문화대혁명’이었다.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주자파(走資派)의 수괴’로 몰렸다. 류의 아내 왕광메이(王光美, 1921∼2006)는 군중집회에 끌려나와 모욕당했으며, 미국 스파이의 죄명이 씌워졌다. 류는 격리되어 심신이 무력화된 가운데 죽었다.
죽의 장막 속에서 문화대혁명의 소식이 처음 흘러나왔을 때, 혁명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혁신의 모습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훗날 그것은 마오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대재앙이었음이 판명되었다. 참담한 경제 실패를 가리기 위해 이념 투쟁을 전개했고, 이로 인해 더욱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마오의 시대를 거쳐 다음 시대의 과제에 힘써야 할 때 마오의 권력욕이 이를 지체시킨 것이다.
결국 마오도 죽고 문혁도 끝났다. 덩샤오핑이 재기하여 상황을 종결하고 경제 건설에 돌입했다. 덩이 이끈 중국은 마오의 과오를 명확히 한 데서 가능했다. 덩은 신중국 건설에 대한 마오의 공적 또한 인정했다. 류는 1980년 복권되었다. 1987년 중국 화폐 초상 인물로 마오와 류가 등장한 것은 상징적이다.
옛글을 읽다 보면 ‘시무’(時務)란 말이 나온다. ‘그 시대에 힘쓸 일’ 또는 ‘시대적 과제’란 뜻이다. 시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율곡 이이는 시무를 창업·수성·경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디딤돌 구실을 했던 사람이 나중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를 적잖게 찾을 수 있다. 해방자가 또 다른 억압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사람이 변하거나 그의 역량이 한계에 부딪힌 경우도 있겠지만, 시대가 바뀐 탓일 수 있다.
세상사란 오히려 자신이 일조하여 이뤄 낸 변화 때문에 자신은 떠나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힘쓸 바가 달라지고, 그에 맞는 적임자도 달라진다. 그런데도 한때의 성취에 도취하여 자기만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것을 자임하는 것은 헛된 미련이거나 오만한 독선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럴 만하다. 또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거론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로 칭송하기도 한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구성원이 다르긴 하지만 병렬적으로 거명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통합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병렬적 표현이 가끔 주저될 때가 있다. 혹시 이것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와 진입하려는 자의 야합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개발독재식 경제 전략이 지금에는 통하지 않고, 과거의 민주화투쟁에 안주하기엔 아직 민주주의의 갈 길이 멀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낡은 사고와 전략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한때의 행위와 성취는 칭찬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궁색하다. 과거의 그것이 그대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산연구소의 중국 인문기행으로 창사를 다녀와서, 곧바로 다른 일로 상하이에 갔다. 20년 만에 방문한 상하이의 더욱 높아진 고층 빌딩이 인상적이었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중국의 성취는 괄목상대할 만하다. 그러나 높은 만큼 그늘이 있다. 중국은 성취 이후의 다른 과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성취에 우리가 안주할 수 없다. 시대는 바뀐다. 과거의 성취를 공고히 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시대에 힘쓸 과제는 무엇인가.
창사에서 약간 떨어진 사오산(韶山)에 있는 마오의 옛집을 찾았다. 마오의 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곳에서 창사 쪽으로 20km, 차량으로 40분가량을 가면 류사오치(劉少奇, 1898∼1969)의 옛집이 나온다(닝샹, 寧鄕). 류사오치는 마오와 함께 신중국 건설의 주역이었다. 류는 마오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주석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은 동향(同鄕)의 동지였던 것이다.
결국 마오도 죽고 문혁도 끝났다. 덩샤오핑이 재기하여 상황을 종결하고 경제 건설에 돌입했다. 덩이 이끈 중국은 마오의 과오를 명확히 한 데서 가능했다. 덩은 신중국 건설에 대한 마오의 공적 또한 인정했다. 류는 1980년 복권되었다. 1987년 중국 화폐 초상 인물로 마오와 류가 등장한 것은 상징적이다.
옛글을 읽다 보면 ‘시무’(時務)란 말이 나온다. ‘그 시대에 힘쓸 일’ 또는 ‘시대적 과제’란 뜻이다. 시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율곡 이이는 시무를 창업·수성·경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디딤돌 구실을 했던 사람이 나중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를 적잖게 찾을 수 있다. 해방자가 또 다른 억압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사람이 변하거나 그의 역량이 한계에 부딪힌 경우도 있겠지만, 시대가 바뀐 탓일 수 있다.
세상사란 오히려 자신이 일조하여 이뤄 낸 변화 때문에 자신은 떠나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힘쓸 바가 달라지고, 그에 맞는 적임자도 달라진다. 그런데도 한때의 성취에 도취하여 자기만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것을 자임하는 것은 헛된 미련이거나 오만한 독선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했다고 자랑해 왔다. 그럴 만하다. 또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을 거론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로 칭송하기도 한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구성원이 다르긴 하지만 병렬적으로 거명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통합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병렬적 표현이 가끔 주저될 때가 있다. 혹시 이것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와 진입하려는 자의 야합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개발독재식 경제 전략이 지금에는 통하지 않고, 과거의 민주화투쟁에 안주하기엔 아직 민주주의의 갈 길이 멀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낡은 사고와 전략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한때의 행위와 성취는 칭찬할 만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궁색하다. 과거의 그것이 그대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산연구소의 중국 인문기행으로 창사를 다녀와서, 곧바로 다른 일로 상하이에 갔다. 20년 만에 방문한 상하이의 더욱 높아진 고층 빌딩이 인상적이었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중국의 성취는 괄목상대할 만하다. 그러나 높은 만큼 그늘이 있다. 중국은 성취 이후의 다른 과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성취에 우리가 안주할 수 없다. 시대는 바뀐다. 과거의 성취를 공고히 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시대에 힘쓸 과제는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