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꽃섬길을 걸었다. 이름도 이쁜 섬에서, 돌담에 그려진 물고기만큼 사랑스러운 작은 섬에서, 참으로 ‘다솜한’ 시간을 보냈다. 그저 걷고 그저 보고 그저 내맡기고 특별한 목표도 없이 시간을 쓰고, 그러다가 압도적인 풍경 앞에 넋을 잃으면 가벼워지고 행복해지는 기분. 뭔가가 회복되고 건강해지는 시간이었다. 꿈결 속에 있는 것처럼 조금만 더 이렇게 있고 싶을 때, 이럴 땐 무엇인가가 우리를 둥글게 에워싸고,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름다운 것들과 기쁨을 주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일까.
배를 타고 잠시 건너왔을 뿐인데 시간의 주름을 건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익숙한 곳을 떠나오면 새삼스레 인생이라는 여행의 길동무가 되어 준 이들이 고마워진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손잡고 걷는 이들이 많다. 그 어색한 다정함도 좋아 보인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등을 기대거나 서로의 무릎을 베고 꽃잠을 자는 모습도 흐뭇하게 바라봐진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물을 때 “그냥” 그렇게 말하는 순간들이 기분 좋은 것이다. 볼 빨간 사춘기 애들처럼 다정하게 걷고 섬 그늘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짠내 실은 바람을 마주하고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꿈 같고 꽃 같고 햇살 같은 날들을 다시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은 날들, 한나절 따스한 햇볕과 소금기 얹은 바람이면 충분했던 시간이다.
그날 이후 ‘어쩌다 섬 여행’에 맛들였다. 백야도, 금오도, 하화도, 연홍도, 소록도, 사도, 개도…. 일렁이는 햇빛과 나뭇잎에 머물고 있는 생명력이 쏟아지는 숲길, 멸치를 쪄서 말리는 작업장, 푸르게 펼쳐져 있는 방풍나물 밭, ‘개미진’ 섬마을 밥상, 꽃 가꾸는 할매들과 한가로운 ‘냥이’들, 바위 끝에 피어난 나리꽃, 깊은 산 속 엉겅퀴, 맨들맨들 몽돌 해변, 불긋불긋 산딸기, 도라지 꽃밭에 걸린 구름…. 예전에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과 온전히 마주하는 꿈을 꾼다.
삶이 그렇듯 섬마다 이야기와 비밀과 아픔과 기쁨이 숨어 있다. 바닷가 조약돌과 따개비, 부표와 어구들이 즐거운 미술품으로 빛나는 섬도 있고, 인권 유린과 강제 노역의 현장으로 눈물 쏟았던 섬도 있다. 차르락차르락 바닷물 들고 나는 소리와 하늘하늘 춤추는 삐비꽃 모두 다 아름다웠던 순간도 있고, 백 년 전 피맺힌 울음과 외침이 바람이 되어 왕왕 불어오는 것 같아 아픈 때도 있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과 폭력이 사라지는 그런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우리는 반짝이는 은빛 이파리가 되고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되고 먹기와 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풍경을 닮아 간다고 한다. 그러니 보다 나은 시간, 보다 아름다운 세계로 자꾸자꾸 나를 데려가야겠다. 아름다움은 삶의 해법을 던져 주진 않으나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준다. 버티게 한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것에 마음을 열 때,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지만 혹독하다는 것 또한 아는 사람들은 고난을 묵묵히 인내할 줄 아는 것처럼.
‘삶을 여행처럼, 여행을 삶처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여행지에서는 누군가 내 짐을 드는 것을 상상도 못 하지만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들어주길 원한다. 여행지에서는 세상 만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선 내가 누구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으나 삶 속에선 제발 나 좀 알아봐 달라고 부질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여행지에서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삶 속에서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난다 중에서)
우리가 힘을 내어 살아가도록 돕는 풍경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 조건도 없이 공평하게 에너지를 나눠준다. 사랑으로 세상을 마주 서게 하고 세상을 이로운 쪽으로 작동시킨다. 그런 하늘, 그런 반짝임이라면 뚝 떠서 가슴에 담아 와도 좋겠다. 지치고 상처받은 인간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기적 같은 생기를 얻은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모든 여행은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여행)’ 위함이니까.
휴가철 남도의 아름다운 섬마을에 깃들고, 거기 머무는 동안 당신의 눈동자에 담아 오면 좋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최근 트렌드에 맞게 분류되는 ‘놀섬’ ‘미지의 섬’ ‘맛섬’ ‘쉴섬’ ‘가기 힘든 섬’에 보태어 당신만이 이름 지어 줄 ‘발견의 섬’으로서 말이다.
삶이 그렇듯 섬마다 이야기와 비밀과 아픔과 기쁨이 숨어 있다. 바닷가 조약돌과 따개비, 부표와 어구들이 즐거운 미술품으로 빛나는 섬도 있고, 인권 유린과 강제 노역의 현장으로 눈물 쏟았던 섬도 있다. 차르락차르락 바닷물 들고 나는 소리와 하늘하늘 춤추는 삐비꽃 모두 다 아름다웠던 순간도 있고, 백 년 전 피맺힌 울음과 외침이 바람이 되어 왕왕 불어오는 것 같아 아픈 때도 있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과 폭력이 사라지는 그런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우리는 반짝이는 은빛 이파리가 되고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되고 먹기와 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풍경을 닮아 간다고 한다. 그러니 보다 나은 시간, 보다 아름다운 세계로 자꾸자꾸 나를 데려가야겠다. 아름다움은 삶의 해법을 던져 주진 않으나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준다. 버티게 한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빛나게 하는 것에 마음을 열 때,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지만 혹독하다는 것 또한 아는 사람들은 고난을 묵묵히 인내할 줄 아는 것처럼.
‘삶을 여행처럼, 여행을 삶처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여행지에서는 누군가 내 짐을 드는 것을 상상도 못 하지만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내 짐을 들어주길 원한다. 여행지에서는 세상 만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선 내가 누구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으나 삶 속에선 제발 나 좀 알아봐 달라고 부질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여행지에서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삶 속에서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난다 중에서)
우리가 힘을 내어 살아가도록 돕는 풍경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 조건도 없이 공평하게 에너지를 나눠준다. 사랑으로 세상을 마주 서게 하고 세상을 이로운 쪽으로 작동시킨다. 그런 하늘, 그런 반짝임이라면 뚝 떠서 가슴에 담아 와도 좋겠다. 지치고 상처받은 인간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기적 같은 생기를 얻은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모든 여행은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여행)’ 위함이니까.
휴가철 남도의 아름다운 섬마을에 깃들고, 거기 머무는 동안 당신의 눈동자에 담아 오면 좋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최근 트렌드에 맞게 분류되는 ‘놀섬’ ‘미지의 섬’ ‘맛섬’ ‘쉴섬’ ‘가기 힘든 섬’에 보태어 당신만이 이름 지어 줄 ‘발견의 섬’으로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