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고 말해 시끄럽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로 시끄러워야 할 대통령 후보들은 이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다. 10년 전의 발언을 갖고는 사력을 다해 치고받던 후보들이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충격적인 발언에는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시진핑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런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관심이 간다. 크게 보아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한국 고대사 강역문제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에서 벌어졌던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 중국 영토인 만주 및 하북성, 내몽골 일대에서 전개되었던 고조선과 고구려 및 발해사는 모두 중국사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

동북공정에 대한 국민 여론이 뜨겁자 노무현 정권은 2003년 고건 총리 주재로 대책 회의를 열어 ‘고구려재단’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확대 재편했다. 그러나 정부의 설립 목적과는 달리 식민사학자들에게 장악된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공정 한국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행태들로 일관해 식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동북아재단의 이런 행태에 자신감을 가진 중국은 2012년 미 상원에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 변천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만주와 북한 전역은 중국사의 강역이었다는 보고서다. 중국의 팽창주의 정책에 골치가 아팠던 미 상원은 이 문건을 한국 정부에 전하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물었다.

이명박 정부는 외교부 관료와 당시 동북아재단 이사장, 그리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만들던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에 관여하는 역사학자를 미 상원에 보내 답변하게 했다. 그런데 그 답변이라는 것이 중국 측의 견해가 대부분 맞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북한 강역은 중국사였다는 이 내용이 현재까지 한국 정부가 미국 측에 제출한 공식 견해이다. 시진핑의 발언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을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 고대사학자들에게 47억 원의 거액을 주어 이른바 ‘동북아역사지도’를 제작하게 했는데, 이 지도는 만주 강역과 북한 지역을 중국 영역으로 그린 것은 물론 조조가 세운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지배했다고 그려 놓았고, 심지어 독도까지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이런 사건 경과를 아는 식자들이 볼 때 시진핑이 이런 인식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의외의 사건은 아니다. 해방 후 지금까지 청산하지 못한 식민사학의 원죄가 낳은 사생아가 시진핑의 발언이다.

시진핑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조선이 명·청과 맺었던 조공 체제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조선과 명·청 사이의 조공 체제는 조선에서 일방적으로 갖다 바친 것이 아니다. 명나라는 조선 개국 초 “지금부터 3년에 한 번씩만 조공하시오”(自今三年一朝)라고 권했다.(‘태조실록’ 2년 9월 2일) 조공 비용이 많이 든다는 명분이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조공에는 회사(回賜)가 있다”는 말처럼 조선에서 조공하면 명나라는 회사를 하는데 회사품이 조공품보다 많아야 했다. 또한 조공 체제는 일종의 공무역 시스템이었는데, 조선에 이익이었기에 명나라는 3년에 한 번 오라고 한 반면 조선은 1년에 세 번 가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특정 국가가 독립국인지 여부를 가리는 기준은 국왕에 대한 선출권과 계승권 여부인데, 조선은 조선 내부의 법칙에 따라 국왕을 선출했다. 뿐만 아니라 국왕이 관리 임면권, 군사 지휘권, 외교권을 배타 독점적으로 행사했던 완전한 독립국이었다.

시진핑의 발언은 역사 문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한 나라나 한 민족의 생존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아직도 타인의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노예의 역사학, 즉 식민사학이 주인의 역사학으로 바뀌는 날이 이 나라가 진정 정신적으로 독립국가가 되는 날일 것이다. 역사를 빼앗기면 궁극에는 영토를 빼앗긴다는 것이 그동안의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