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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간속을 걷다<37>남선전기와 수기동 공구거리] 산업발전 이끈 모터소리 어데가고 … 추억만 남아
군부대·터미널 등 위치 모터·기계 판매·수리 호황
IMF 터지며 가동률 ‘뚝’ 건물 현대화 작업도 무산
인수자 없어 두달전 폐업신고
2016년 10월 19일(수) 00:00
이번 ‘광주, 시간 속으로’ 공간은 광주 충장로 4·5가와 인근 수기동 가게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에게서 소개를 받았다. 아주 오래된 남선전기가 곧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며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가게와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채록해 두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도 함께였다.

광주 명성예식장 주차장 맞은편, 일식집 쌍학 옆길에는 모터, 전기, 기계·선반 등을 판매하고 제작·수리하는 가게가 보인다. 한창 때는 수십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7∼8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터줏대감 남선전기의 주인장은 기후근(75)씨다. 모터 등을 판매하고 수리하는 가게로 아쉽게도 기씨는 두어달 전 폐업 신고를 냈다. 인수자를 찾고 있지만 마땅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당분간 가게 문은 열 생각이다. 45년 가까이 운영하던 곳의 문을 내릴 때 어찌 미련이 남지 않았겠는가.

“정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식들도 다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요. 하지만 바로 문을 닫지는 않을 생각이예요. 예전에 함께 했던 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현업에 있는 사람 중에는 내가 가장 오래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씨는 6·25 후 중학교를 중퇴하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의 금남로 4가 인근 삼흥공작소에서 땀을 쏟으며 기술을 익혔다. 기씨가 수기동 거리로 들어와 남선전기에 다니기 시작한 건 20세 전후인 196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남선전기는 호남비료에 다니던 사장이 함께 운영하던 곳이었다. 기씨는 가게를 인수하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1968년 12월 24일. 그리고 1970년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드디어 ‘내 가게’를 갖게 된 셈이다.

그가 막 이 거리에 왔을 땐 지금 남선전기의 맞은편, 그러니까 명성예식장 주차장 쪽도 모두 이런 가게였다. 3∼5평짜리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거리 가까운 곳에 호남 전기, 남전, 광주여객, 금성여객, 함평여객, 동방여객 등 버스회사들이 즐비해 그 만큼 수요가 많았다.

공군부대와 상무대 등이 도심에 위치했던 것도 이 거리가 발전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불법이기는 하지만 한 때는 공군부대 등에서 유출된 자동차 부품 등이 은밀히 거래되기도 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군, 검, 경이 함께 조사를 나서는 풍경도 잦았다.

1970년대 80년대가 전성기였다. 특히 남선전기의 경우 농촌 근대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수요가 늘었다. 탈곡기 등이 집집마다 도입되고, 손으로 작업하던 가마니 짜기 등도 모두 자동으로 변환되면서 모터를 많이 공급했다.

“지금이야 시골 면소재지에도 판매장과 수리소가 있지만 예전에는 수리를 하려면 무조건 광주로 와야했죠. 상가와 가까운 인근 시외버스 정류장에는 기계를 가지고 버스를 타고 오는 이들로 붐볐고 덩치가 큰 제품들은 트럭을 대절해 싣고 오기도 했습니다.”

광주고속, 화순광업소, 일신방직 등도 모두 기씨의 거래처였다.

“예전에 저보다 어르신들의 말을 들으면 이 골목은 현금이 많이 돌았다고 해요. 변변한 부품과 재료가 없던 시절, 드럼통 같은 것을 일일이 펴고 용접을 해 버스를 수리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IMF가 터지면서 거리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이곳까지 함께 피해를 봤다. 광천동 공단이 생기고 중흥동, 양동, 운암동 등에도 이런 거리가 생겨나면서 수기동 거리는 한산해졌다. 한때 2층 건물로 리모델링하는 현대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무산됐다.

전업사, 기계·선반 업자 등 40여년 가량 거리를 지켜온 9명의 업주는 지금도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기씨가 보여주는 낡은 앨범에는 거리 상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가득했다. 1988년 부부동반 모임으로 낙산사에 갔을 때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찍은 기념사진도 얼핏 보인다.

지난해 남선전기 맞은 편 쪽의 상일 라이닝, 대동 농기구 등이 잇따라 문을 닫는 등 지금 이 거리는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고 지금 모임도 같이 하는 현대비철금속의 송민호 사장, 환풍기와 선풍기 등이 전문인 태양정밀의 채특징 사장 등이 그와 함께 거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부푼 마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열었던 것처럼, 바로 옆의 ‘대신전기’와 ‘동일전기’는 기씨에게서 기술을 배워 독립해 나간 이들이 운영하고 있다.

지금 쇠락하기는 했지만 수기동 골목은 광주 산업 발전을 밑바닥에서 견인한 귀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