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 저를 따라다니던 단어입니다. 친한 후배들, 동기들을 만나면 언제나 ‘일 좀 그만하라’고 아우성입니다. 바빠서 죽겠다면서 왜 일을 만드는지 모르겠답니다.

정작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저도 왜 바쁘게 살아가는지 몰랐습니다. 아마 조급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군대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이 아까웠나 봅니다. 그래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 사회에 일찍 나가고 싶었습니다. 참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대외활동은 기본이며, 시간이 있을 때면 지역 출제 VJ활동을 했습니다. 일이 없을 때면 정독실에 앉아있었습니다. 바쁘게 사는 만큼 취업을 일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9시에 등교하고, 집에 들어서는 시간은 저녁 10시였습니다. 바쁜 날에는 7시에 일상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때가 2학년, 23살이었습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가을, ‘영상 커뮤니케이션’ 수업은 저에게 변화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한 주에 하나 씩 총 7장의 사진을 찍어오는 과제였습니다. 처음에는 ‘순간’을 찍고 싶었습니다. 시선이 머무르는 ‘찰나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금요일에 알람을 맞췄습니다. 알람이 울릴 시간은 전날 밤에 무작위로 정했습니다. 하루 일정을 소화하다가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그 때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사진 찍기로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자세와 시선은 알람이 울렸을 때 그 자세, 그대로 고정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눈앞으로 가져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물론, 노출과 구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시선’을 ‘사진’으로 옮기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과제 제출 날이 다가오고, 7장의 사진을 프린트했습니다. 시간 순으로 사진을 나열해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들이 똑같았습니다. 7장의 사진 중 5장이 정독실 책상 사진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독실에서 바라본 창문이었으며, 남은 하나는 조모임 사진이더군요. 똑같은 7장의 사진을 바라보며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저의 생활 범위는 정독실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저의 일상은 그저 책상 앞에서만 분주했습니다.

군대에서 막 전역하고 빠르게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원하는 직장으로 들어가는 때가 가까워 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작 2학년인데, 남들보다 늦었으니까. 전력 질주해야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잡아준 것이 7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일중독’에서 벗어났는지 물어본다면, 답은 ‘아니요’입니다. 여전히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중독되었습니다. 영상을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밤 세워 편집을 하더라도 완성된 작품을 보면 뿌듯합니다. 힘들어도 다시하고 싶은 일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일입니다.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고 영상을 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비평문을 써보기도 합니다. 그저 무작정 정독실 안에서 책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홀가분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깨달음이 늦었습니다. 활자 속에 갇혀 지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학년 때 학과 선배들이 ‘놀아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놀아라’ 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고,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한데 놀라고 말하니 무책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선배들의 말이 맞습니다. 잘 놀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공부에 얽매이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놀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에 중독되는 것은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