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처리라는 문제를 두고 야당이 무제한 토론을 끝내고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이 문제에 대한 이슈가 사그라들었다. 정국은 선거 준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 표명과 테러방지법이 갖는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비롯한 몇 명의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대한변호사협회를 빙자해 테러방지법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일을 두고 법조계 내부에서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단 테러방지법의 정당성이나 위험성에 대한 판단은 뒤로 밀쳐놓더라도, 이번 대한변호사협회의 의견표명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변호사의 분노를 사고 있다.

우리나라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을 해야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즉 대한변호사협회는 의무가입 단체로서 구성원들의 이해관계, 정치적 성향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 사이 찬반의견이 팽팽한 테러방지법에 대하여 회장을 비롯한 몇 명의 변호사가 모여 ‘전부 찬성’이라는 의견을 제시해 버렸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협회장은 아직까지도 사건의 진상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근 IS를 필두로 한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법의 취지나 목적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전부 찬성이라는 독단적으로 의견을 표명한 테러방지법은 과연 대한민국의 변호사들이 전부 찬성할만한 법률인가? 논란이 된 것처럼 이 법에는 명백한 독소 조항이 존재하고, 제도의 악용을 견제할 장치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자칭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을 사명으로 내걸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는 테러방지법이 갖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192시간25분 필리버스터, 야당 국회의원들의 192시간25분의 테러방지법 반대 의견을 들으며 대한변호사협회의 의견은 오직 4글자 “전부 찬성”뿐이다. 스스로를 사회 지도층이라고 일컬으며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변호사라고 외치던 오만한 자존감은 어디에 두었는지 묻고 싶다.

개인적인 의견으로서 국민의 안전이라는 테러방지법의 취지와 목적에 동의하면서 그 법을 찬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권력분립, 영장주의 등 중요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법률에 대하여 대한변호사협회가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그 법을 전부 찬성했다는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법안에 대하여 구성원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전부 찬성이라는 의견을 여당에 전달한 것은 변호사단체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동안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변호사 단체의 수장으로서 걸어온 행보의 진정성에도 강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 정도의 민주주의 제도 확립과 인권보호의 이익을 누리고 있는 현 세대는 이를 위해 희생한 많은 사람에게 피와 땀을 빚지고 있다. 한 번 제도가 만들어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현실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중세시대 귀족과 평민을 구별하고, 조선왕조 500년 동안 양반과 노비를 구별하던 시대에 살던 사람이 그 제도를 비판하는 일이 얼마나 있었는가. 결국, 그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매우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가 국민안전, 테러방지라는 이름의 세련된 포장에 현혹되어 거대한 파놉티콘 속으로 들어와 버린 것은 아닐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