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눈을 뜨는 것을 돕는 것이지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을 돕자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은 뛰어난 서양 미술사가인 곰브리치가 그 유명한 저서 ‘서양 미술사’의 서문에 쓴 것이다. 별로 겸손해 보이지 않는 이 문장은 그럼에도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혹시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게 한다.
곰브리치는 왜 이런 말을 굳이 서문에 남긴 것일까? 그 이유는 자신이 쓴 책이 미술에 대한 바른 지식과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오히려 ‘설익은 지식과 속물근성’을 확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책이 어설픈 지식 자랑과 뜻도 모르는 어려운 전문용어를 재치 있게 말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을 염려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좋은 책은 얄팍한 지식을 수집하는 속물을 위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발견의 항해’를 떠나는 용기 있는 여행자를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누군가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지식이 있다고 해도, 곰브리치가 말하는 그 ‘눈’을 반드시 뜨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는 책이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눈을 떠야 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눈을 뜨는 것’과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다. 그래서 눈을 뜬 사람은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이 없고, 입이 헤픈 사람은 눈을 뜨지 않은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눈을 뜬다는 것은 신체의 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사물의 현상적인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배후를 통찰하고 숨겨진 의미를 읽어 내는 눈을 말한다. 나가서 세상을 향한 그러한 통찰을 자신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바꿔 내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지위와 학식 또는 재산과는 전혀 상관없이 눈은 감았고 헤픈 입만 넘쳐 나는 것을 쉽게 본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요즈음은 헤픈 입이 대단한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속물근성에 대한 곰브리치의 지적은 비단 미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문학에 관련해서 ‘헤픈 입’의 문제는 염려스러울 정도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밖에서 시작된 인문학 열풍은 이제 하나의 패션·유행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유행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유행 그 자체이다. 인문학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문학은 많은 다른 사람이 입으면 자신도 입어야 하는 유행하는 ‘옷’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소비해야 하는 품목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이란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주체적인 자기 성숙과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역시 곰브리치가 말한 ‘눈은 뜨고 입은 닫는 법’을 배우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인문학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뜨는 것을 돕기보다는 대신 생각하고, 대신 고민하고, 대신 판단해 주는 일에 열심이다.
심지어는 인문학 학자가 온갖 인생 고민을 상담해 주는 것도 모자라서, 한바탕 호통을 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비법’까지 알려 주는 진풍경이 벌이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운전부터 출산까지 모든 것이 ‘대리’를 통해서 해결되는 요즘에, 인문학마저 대리기사 노릇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인문학이 삶의 모든 문제를 대리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 안의 인문학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대중은 밖에서 인문학을 살려 냈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긴 인문학 열풍은 눈보다는 입을 만족시키는 ‘쉽고 친절한 인문학’이라는 유행 상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이, 스스로 눈을 뜨는 힘든 노동이 없는 인문학은 이름뿐인 공허한 것이며, 누구에게나 쉽고 친절한 인문학은 헤픈 입을 위한 토막 난 몇 마디 말을 남길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모든 인문학은 스스로 헤픈 입이 되어서, 새로운 헤픈 입을 다시 양산하는 기계가 되어 버린 것인가? 또는 진열대에서 사라지는 상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배반하며 민망한 호객 행위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천만 다행으로 그렇지는 않다. 소수이지만 여전히 인문정신의 회복과 인문적 가치의 확산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문학의 힘은 종속과 굴종을 거부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그 힘을 통해서 상품 진열대 밖에서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일이 비록 느릴지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상품을 위한 진열대 위에서는 삶의 의미와 사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눈을 뜰 것인가, 헤픈 입을 놀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문학의 지평을 넘어서, 삶이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과 공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선택이 된다. 2016년, 한 해를 ‘통찰의 눈은 뜨고 헤픈 입은 다무는 해’가 되게 하는 것은 유명한 저자의 두꺼운 책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문장은 뛰어난 서양 미술사가인 곰브리치가 그 유명한 저서 ‘서양 미술사’의 서문에 쓴 것이다. 별로 겸손해 보이지 않는 이 문장은 그럼에도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혹시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게 한다.
곰브리치는 왜 이런 말을 굳이 서문에 남긴 것일까? 그 이유는 자신이 쓴 책이 미술에 대한 바른 지식과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오히려 ‘설익은 지식과 속물근성’을 확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책이 어설픈 지식 자랑과 뜻도 모르는 어려운 전문용어를 재치 있게 말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을 염려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눈을 뜨는 것’과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다. 그래서 눈을 뜬 사람은 입을 헤프게 놀리는 일이 없고, 입이 헤픈 사람은 눈을 뜨지 않은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눈을 뜬다는 것은 신체의 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사물의 현상적인 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그 배후를 통찰하고 숨겨진 의미를 읽어 내는 눈을 말한다. 나가서 세상을 향한 그러한 통찰을 자신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바꿔 내는 힘을 의미한다.
언제부터인가 대학 밖에서 시작된 인문학 열풍은 이제 하나의 패션·유행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유행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유행 그 자체이다. 인문학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문학은 많은 다른 사람이 입으면 자신도 입어야 하는 유행하는 ‘옷’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소비해야 하는 품목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이란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주체적인 자기 성숙과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역시 곰브리치가 말한 ‘눈은 뜨고 입은 닫는 법’을 배우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인문학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뜨는 것을 돕기보다는 대신 생각하고, 대신 고민하고, 대신 판단해 주는 일에 열심이다.
심지어는 인문학 학자가 온갖 인생 고민을 상담해 주는 것도 모자라서, 한바탕 호통을 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비법’까지 알려 주는 진풍경이 벌이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운전부터 출산까지 모든 것이 ‘대리’를 통해서 해결되는 요즘에, 인문학마저 대리기사 노릇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인문학이 삶의 모든 문제를 대리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 안의 인문학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대중은 밖에서 인문학을 살려 냈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긴 인문학 열풍은 눈보다는 입을 만족시키는 ‘쉽고 친절한 인문학’이라는 유행 상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삶이 그렇듯이, 스스로 눈을 뜨는 힘든 노동이 없는 인문학은 이름뿐인 공허한 것이며, 누구에게나 쉽고 친절한 인문학은 헤픈 입을 위한 토막 난 몇 마디 말을 남길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모든 인문학은 스스로 헤픈 입이 되어서, 새로운 헤픈 입을 다시 양산하는 기계가 되어 버린 것인가? 또는 진열대에서 사라지는 상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배반하며 민망한 호객 행위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천만 다행으로 그렇지는 않다. 소수이지만 여전히 인문정신의 회복과 인문적 가치의 확산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문학의 힘은 종속과 굴종을 거부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그 힘을 통해서 상품 진열대 밖에서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일이 비록 느릴지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상품을 위한 진열대 위에서는 삶의 의미와 사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눈을 뜰 것인가, 헤픈 입을 놀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문학의 지평을 넘어서, 삶이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과 공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선택이 된다. 2016년, 한 해를 ‘통찰의 눈은 뜨고 헤픈 입은 다무는 해’가 되게 하는 것은 유명한 저자의 두꺼운 책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