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중에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인문학 프로그램의 팬이 된 이가 있다. 어제 문화전당에서 열린 ‘산해경(山海經·중국 풍물·지리, 신화집)과 놀기, 그리고 신화의 귀환’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도 그가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였다. 평소 판타지와 신화에 관심 많았던 그는 “국내 신화·설화 전문가들의 강연을 광주에서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고 말했다.

문화전당에서는 개관 이후 색다른 주제·형식의 인문학 강좌와 학술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서서히 팬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과학 융합 콘서트 ‘빛,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비롯해서 주한인도대사관과 공동 개최한 ‘2015 인도문화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강좌 등은 크게 주목을 받은 행사였다. 마에스트로 성시연이 이끄는 경기 필하모닉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출연한 문화전당 제야음악회는 입장권이 전석 매진되기도 했다.

문화전당이 광주에 있기에 광주 시민들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만끽하고 있다. 같은 문화권이면서도 여전히 낯선 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사회·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는 문화전당은 그러나, 지역 문화·예술계로부터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문화계의 한 전문가는 “문화전당이 지역의 문화산업 발전이나 로컬 아티스트 육성책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광주비엔날레가 성장과정에서 지역과 소통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미술인들로부터 외면받았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문화전당의 지지 기반이 돼야 할 예술계와 긴밀한 관계 설정이 없다면 그만큼 문화전당의 성공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문화전당이 그간 추진했던 사업에서도 이런 지적의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문화전당 예술극장은 지역 예술인들만을 대상으로 공모를 거쳐 ‘아트웨이 숨’의 ‘소리의 숲’, ‘검은 밤’의 ‘비는 오지 않지만 우리에게 우산이 있지’ 등 두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들 작품은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발표 기회와 무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2차 공모 사업이 진행됐지만 결과 발표가 미뤄지는 등 사업이 잠정 중단돼 있다는 점이다.

문화전당이 지난해 추진했던 ‘아시아 스토리 커뮤니티 구축 사업’도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전국에서 5명의 작가가 공모를 거쳐 참여했으나 광주·전남 작가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 사업은 우즈베키스탄과 광주를 오가면서 중앙아시아에 널리 알려진 민담이나 설화·동화 등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어린이문화원은 지난해 개관 당시 지역 공연단체의 창작물을 무대에 올렸으나, 아쉽게도 광주를 ‘어린이 공연예술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첫 단계인 지역 공연 단체들과 공동창작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지역 예술계에서는 ‘문화전당이 폐쇄적’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예술계의 부정적인 시각을 일소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길이 없지는 않다. 그것은 우선 문화전당이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전당이 시행했던 ‘아시아 창작공간 네트워크 국제행사’와 유사한 국제 교류·창작 프로그램에 광주 작가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이 그것이다. 문화전당 5개원은 사실 이 같은 해외 교류 프로그램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작가들에게 폭넓은 참여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전당이 지역 예술계에 폭넓게 문호를 개방하면 응답해야 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책무다. 그 문호가 크든 작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민 손을 뿌리쳐서는 곤란하다.

전문가들은 문화전당이 예술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 예술고와 대학들을 연계해 예술 기획자와 예술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문화전당은 이제 첫 걸음마를 뗀 상태다. 그 보폭을 넓혀야 하는 병신년에 문화전당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