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이 현덕에게 말했다. “이것은 서천(西川) 지역 54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도모하신다면 북쪽은 천시(天時)를 얻은 조조에게 양보하고, 남쪽은 지리(地利)를 차지한 손권에게 양보하고, 장군께서는 인화(人和)를 얻도록 하십시오. 세 발 달린 솥과 같은 대립적 형세를 이루시면, 그 후에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명의 삼분지계에 눈이 뜨이고 흉중의 맺힌 것이 풀어지며 머리가 맑아진 유비는 이후 촉 지역에 기반을 구축하여 ‘삼국’의 정립을 이룩했다.

당시 삼국의 인구와 병력은 위나라(450만 명·20만 명), 오나라 (230만 명·15만 명), 촉나라(94만 명·8만 명) 순이었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촉은 그 국력이 위의 4분의 1에 미치지 못한다. 농업 위주의 사회에서 인구와 토지가 국력을 좌우했으니, 삼분지계의 일부분을 감당하기에 촉은 너무 미약했다. 이러한 열세를 돌파하고자 공명은 오나라와 동맹을 맺기도 하고, 승상직을 맡아 갖은 계책을 동원해서 촉의 안위를 도모하고 삼국의 통일을 꾀했다. 그 결말이야 초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끝나고 말았음은 ‘삼국지’를 읽으신 독자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가 ‘삼분지계’로 나아갈지, ‘오분, 칠분지계’로 나아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야의 대립 구도에서 야가 여러 세력으로 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야권이 둘로 나뉘면서 세 세력이 정립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아갈 듯하기도 하다. 이 삼분지계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천시·지리·인화의 삼재를 어느 세력이 획득할 것인가도 불투명하고, ‘병신(丙申)대전’을 치르고자 어느 세력이 어떻게 동맹을 꾀할 것인지도 아리송하며, 과연 동남풍이 불어올 것인지도 헤아리기 어렵다.

천시와 지리를 얻지 못한 유비는 ‘인화’를 도모하고자 노력했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초야에 묻힌 재사와 장수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들이 유비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삼분지계의 한 축을 담당한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열세에 처한 세력이 어떻게 민심을 얻어서 ‘삼국을 정립’하고 대의를 펼쳐 나갔는가를 알려준다.

‘간웅·효웅·영웅’으로 평가가 나뉘는 조조는 가장 막강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삼국의 통일에는 실패했고, 물산이 풍부한 강남의 경제력에 기초한 손권도 결국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공명의 무수한 전략 전술에도 불구하고 공명이 죽고 나서 유비의 아들은 결국 항복을 한다. 역사는 천시를 얻은 조조나, 지리의 이점을 지닌 손권이나, 인화를 도모한 유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천하의 대세는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하며, 합한 지 오래면 반드시 또 나뉜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삼국연의’의 첫머리 ‘도원결의’를 장식하는 이 구절에는 ‘합과 분’이라는 대립적 개념이 담겨 있다. ‘일치 단결’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듯이 우리는 ‘통일·통합’은 좋은 것, ‘분열·분리’는 나쁜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그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다 보면 오히려 ‘뭉쳐서 망하고 흩어져서 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처럼, ‘합과 분’에 있어서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이다. 나와 내 주변을 위해서 나뉘거나 합치는 것은 오래가지 못 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줄 뿐이다. 병신년의 관전 포인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정유대전’의 관전 포인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