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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석 남도향토문학연구원장·행정학박사]식민사관과 고대사 죽이기
2015년 12월 23일(수) 00:00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정부의 일방적인 독주 속에 이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느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조했다. 현행 역사교과서를 바꾸겠다는 뜻으로 듣긴 했지만 과장이 좀 지나치다싶었다. 그래서인지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현대사의 이념논쟁 보다도 역사 곳곳에 배어있는 식민사관을 걷어내는 일일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식민사관에 가려진 고조선의 역사를 되찾고 고대사를 바르게 쓰는 일이라 생각된다.

식민사관은 일본이 한국을 영구지배하기 위해 일본인 역사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이 조작하고 왜곡 발전시킨 역사관이다. 그들이 주장한 ‘고조선 신화설’이나 ‘한사군의 한반도설’ ‘한국사의 타율성론’ 등은 광복 이후에도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제자인 한국인 학자들에 의해 이들이 역사학계의 주류로 행세하면서 통설로 내려온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과서에서 단군을 신화로 배웠으며 필자 역시 그렇게 알고 지내왔다.

그러나 관련서적을 통해서 본 식민사관의 현실적 깊이와 고대사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를 접하면서 실로 그 충격은 컸다. 특히 정인보 선생과 신채호 선생의 뒤를 이은 재야사학과 민족사학 측에서는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사고전서’ 등 새로운 사료를 연구하여 단군은 실제 역사이며 고조선의 수도 왕험성(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연나라와 고조선의 접경에 위치한 요동지방에 있는 또 다른 평양이라는 사실을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사군은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하북성 동남쪽 요서에 있었다는 사실도 포함돼 있다.

고조선의 국경 역시 ‘전한서’, ‘사기’, ‘후한서’ 등 20여종의 사서의 확인을 통해 서쪽으로는 베이징 근처의 난하 유역에 이르고 북쪽은 아르군강, 동북쪽은 흑룡강, 남쪽은 한반도 남부의 해안선에 이르렀음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의 강역도 고조선과 비슷한 위치라고 비정했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 역시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요동에 있었던 또 다른 평양이라는 것을 사료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터였던 살수와 패수가 현재의 청천강과 대동강이 아니라 발해만의 관문인 임유관(하북성 소재)주변의 난하와 영정하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일례로 ‘수서’와 현 중국의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에 의하면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에서 고구려 영양왕(서기 598년) 때 강이식(姜以式)장군이 5만 대군으로 수문제와 주라후 장군이 이끈 30만 대군을 임유관에서 싸워 대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2차 전쟁(서기 612년)에선 을지문덕장군이 수양제의 113만 대군을 살수에서 대파했다고 기록돼 있다. 살수가 청천강이라면 1차 임유관 전쟁에서 대승했던 고구려가 2차 전쟁에서는 임유관과 3천리나 떨어진 청천강에서 전쟁을 했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주장들이 모두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중국의 1차사료(원전)를 근거로 연구해낸 결과임에도 주류 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일체 배제한 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사는 무엇보다 1차사료의 근거와 유적이나 유물에 의한 고증에 의해서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국내 사료가 없으면 관련된 중국 등의 사료를 연구하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일본이 만든 식민사관으로 고대사 죽이기를 계속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