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안 사는 게 아닙니다. 원고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니까 변호사를 살 필요도 없어요.” 얼마 전 민사재판에 출석한 당사자가 했던 말이다.

거의 매주 재판을 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간다. 법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재판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게 마련이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당 배정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충분히 시간을 배정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뒤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간혹 내가 발언을 제지하면, 상대방은 오해하기도 한다. ‘내가 변호사 없이 재판한다고 차별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그럴 의도는 아니지만, 오해할 소지도 다분하다. 위의 말을 한 분도 아마 차별을 받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불편했다. 내가 오해를 샀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호사를 산다’라는 표현이 불편했다. 변호사를 사다니, 변호사가 물건도 아니고….

민사소송법에 선임이라는 용어가 쓰여 있음에도, 법정에서는 ‘변호사를 산다’라는 표현이 별 거부감 없이 사용되고 있다. 상대방 당사자를 대리하여 변호사가 출석해 있는 사건에서는, 상대방을 향해 ‘줄 돈이 없다면서, 변호사를 살 돈은 있느냐’는 등의 발언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위 표현이 너무 법정에서 남발되는 경우에는 간혹 발언에 개입하여 “변호사는 선임하는 것이지, 사는 물건이 아닙니다”라고 정정해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인생 경험이 많지 않은 판사가 주제넘게 훈계한다고 느낄까봐 매번 개입하지는 않는다.

불편함의 근원을 찾다가 ‘사다’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이 궁금했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다. ‘사다’의 첫 번째 뜻은 ‘값을 치르고 어떤 물건이나 권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다’였다. 변호사가 물건이나 권리는 아니므로, 위 뜻은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에 들어맞지 않는다. 다른 뜻 중에 ‘대가를 치르고 사람을 부리다’라는 뜻이 있었다. 예문으로는 ‘짐꾼을 사서 이삿짐을 날랐다’라는 문장에 제시되어 있었다. 위 뜻에는 어느 정도 들어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이 우리말 어법에 크게 어긋나는 표현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편하다. 아무래도 사람을 산다는 표현은 그 사람을 물건과 같이 취급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돈을 지불했으니 그 사람은 나의 말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는 느낌도 든다. 사람이 하는 일들 중에 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들이 있을까? 의사를 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부동산 등기 사무를 법무사에게 맡길 때에도 법무사를 산다는 말을 쓰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 국어사전에 예시된 짐꾼도 면전에서 산다는 표현을 쓰면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고,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을 쓰는 분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누군가 산다는 표현을 쓴다면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변호사가 아닌 내가 듣기에도 불편한데, 직접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쾌할 것인가. 그 말이 통용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 표현은 공적인 자리에서 자제함이 바람직하다.

판사가 되어 법정에 매주 들어가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6년이 흘렀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동안 법정의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음을 몸소 체감한다. 법정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노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부분일 수는 있으나, 법정에서 하는 말에 상호 존중의 마음을 담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진 법정 모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