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교수가 학생 집단을 규정짓는 이런저런 말을 듣기 마련이다. 보편적으로 요즘 대학생들이 들어봤을 법한 말, ‘예전 대학생보다 독서량이 부족하다’, ‘예전만큼 똑똑한 학생들이 잘 없다’부터 시작해서, 내가 다니는 지스트대학(GIST College·광주과학기술원)의 교육 철학과 교육 과정 특성상 듣게 되는 말, ‘미래의 과학자인 여러분은…’, ‘여러분 중에 시나 소설 읽는 사람은 없죠?’ 같은 종류의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그런 말들은 학생 집단의 누군가를 너무 쉽게 지워버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여러분’이라고 손쉽게 묶어버린 사람들 중 누군가는 분명 그 말에 규정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나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 다니지만 과학자가 아닌 다른 장래를 생각하고 있으며, 가끔은 시나 소설도 읽는다. 그 말들에 규정되지 않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별스럽지도 않은 세대 혹은 세상이고, 또 집단을 구성하는 개개인은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니 말이다.

설령, 전체 ‘경향성’을 따져보았을 때 그 말들이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말이라고 해도, 규정하는 말들은 규정지어지는 사람의 자아 이미지에 명확한 틀을 제공하고, 그 틀 안에서만 자기 자신을 상상하도록 제한한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를 규정짓는 말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내뱉어져야 하고, 혹은 아예 내뱉지 않는 편이 낫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고 듣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속해 있는 교육공동체의 특이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인 학교니까, 대부분의 학생이 과학기술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 규정지어지는 것이 대학생 보편을 넘어 인간 보편의 경험이 되는 이유는 한 사람이 다수의 집단을 이해하는 방식의 문제, 높은 계급이 낮은 계급을 이해하는 방식의 문제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는 소수의 책임자가 다수의 구성원을 이끌어가고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소수 책임자는 지시하고 발화하는 주체가 되고, 다수의 구성원은 청자이자 객체이다. 소수의 책임자가 다수의 집단을 파악하고 알맞은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보다 경향성을 파악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소수의 책임자가 효율적으로 파악한 집단의 그 성격은 그 집단의 ‘객체’로서의 성격이다. 어떤 권력의 하부구조에 있는 청자, 객체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적고, 그러므로 소수의 책임자가 이해하는 그 집단의 성격은 결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공동체 내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즉 비(非)가시화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금기만큼이나 비가시화가 위험한 이유는, 나와 다른 존재를 인식조차 못하고 그 존재를 무시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시화는 ‘우리 기혼자’, ‘우리 중산층’, ‘우리 건강인’, ‘우리 한국인’, ‘우리 이성애자’ 등 타인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이는 잠시간 당혹스럽겠지만 뭘 더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잊어버리고 무뎌진다.

누구나 말 한마디로 손쉽게 사람을 지워버릴 수 있다. 쉬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말이 누군가를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 존재가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로 지워지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가 규정지어져 있는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과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계획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