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어느덧 12월입니다. 말 그대로 눈 깜박할 사이에 1년을 마무리하는 달이 다가왔습니다. 나이에 따라 세월의 속도 다르게 느껴진다더니 저에게는 참으로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느껴집니다.

한해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든 새로운 해가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한해를 돌아보며 여러 가지를 회상하겠지만 감사한 일만 회상하고, 감사한 일을 찾는 12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보통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위해서 그 많은 법문을 설하셨지만 당시 ‘조달’이라는 사람은 부처님을 ‘팔만사천가지’로 흉을 보았다고 합니다.

필자는 지난 법회 설교에서 교도님들에게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 조달이 살아 쉼 쉬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도 함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과 조달을 함께 담고 있는 저는 분명 순간순간 어떤 카드이든 꺼내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과 같은 감사와 은혜의 카드는 잘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조달과 같이 부정적이고 단점만 바라보는 카드는 안에서 나오고자 아우성 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카드를 꺼내 써서 어떤 생활을 할 것인가, 어떤 업(業)을 짓고 살 것인가는 결정하는 것은 부처님도 하느님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단점과 아쉬운 점만 찾기 시작하면 아쉬움만이 나에게 다가오고, 은혜와 감사를 찾기 시작하면 은혜와 감사만이 다가옵니다.

원불교 정산 송규 종사는 “감사 생활만 하는 이는 늘 사은(四恩, 없어서는 살 수 없는 네 가지 은혜인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은혜)의 도움을 받게 되고, 원망 생활만 하는 이는 늘 미물에게서도 해독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어느 때 한 제자가 “독사가 어찌 ‘동포은’이 되겠습니까?”라고 여쭙자 “미물인 곤충이 있어야 하겠느냐, 없어야 하겠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제자가 “있어야 하겠습니다”라고 답하자 “그러면 은혜가 아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은혜 아님이 없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원망과 단점은 찾지 않아도 잘 다가오고 느껴지며, 은혜와 감사는 찾을 때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는 감사는 ‘나에게 이렇게 해 주면’, ‘이렇게 해 주었으니’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를 찾다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계속해서 배가되어 돌아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 원망과 아쉬워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접어두고 은혜로웠던 일, 감사한 일을 찾아봤으면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감사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면 처음에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찾기 시작하면 온통 은혜로움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은혜의 덩어리요, 감사의 덩어리로 느끼는 순간 은혜와 감사의 신령스런 기운이 나를 감싸 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정에 메마른 세상일지라도 밝고, 맑은 아름다운 은혜의 빛이 될 것입니다.

12월에는 여러 가지 할 일들이 많아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바빠야 할 일이 무엇인가 돌아봤으면 합니다. 나는 어떤 일에 바쁘고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