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가 제법 싸늘합니다. 풀벌레는 온통 소리로 밤을 지새우고 깨어있습니다. 도량석은 새벽에 절에서 만물을 깨우는 첫 번째 의식입니다. 유달리 넓은 도량과 전각을 돌며 큰소리로 장엄염불(莊嚴念佛)을 하고 스스로의 발밑을 살핍니다. 더불어 세상의 안녕을 살핍니다. 이것은 수행자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당당하고 참답게 깨어서 새벽을 여는 감사함에 어느덧 환희심이 넘쳐 오릅니다.

도량석이 끝나면 바로 천상이나, 인간이나 지옥 세계의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어서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사물을 두드리고 범종을 울립니다. 특히 범종 소리는 장엄하고 거룩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큰 평안을 줍니다. 예불과 더불어 백팔참회의 절을 마치고 나면 일체의 소리와 행위를 다시 거두어들여 오로지 무념으로 돌아가는 좌선에 들어갑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세상의 새벽을 여는 사람입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운동과 더불어 걷기 명상을 합니다. 절 입구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는 색깔은 화려하지만 가벼운 몸짓으로 어느덧 발걸음을 조촐하고 천진하게 합니다. 대숲 길을 지나서 길모퉁이 바로 돌아가면 시냇물의 장엄한 소리에 어느덧 귀가 번쩍 트입니다. 이렇게 보고 듣는 일체 대상을 만나지만 따라가지 않고 순간 포착을 하여 본래 자리로 돌이키면 티없이 푸른 가을 하늘처럼 맑고 밝은 참마음이 나타납니다.

문득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의 깨달음이 생각납니다. 동파거사는 절에서 하룻밤을 머무르며 부처님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밤을 새워 궁구(窮究)하였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몰고 산에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부처님의 장광설법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소동파의 오도송을 읊조리며 일주문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니 어느덧 들판은 점점 금빛으로 번져갑니다. 깨달은 사람은 이제 세상의 번뇌를 지혜로 바꾸는 원리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일체 대상이나 번뇌가 나타나면 따라가지 않고 바로 돌이켜서 비추어 보고 가을 하늘처럼 한점 티끌이 없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티끌인 번뇌에 괴롭지 않으니 마치 푸르렀던 자연이 점점 금빛 물결로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금빛은 부처님을 상징하며 모든 번뇌가 질이 바뀌어 깨달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룻밤 만에 깨달은 소동파는 이제부터는 세상사에 유유자적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가을은 명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한다는 사실에 무상하다는 생각을 내어 빠져버리면 걷잡을 수 없어 허무해집니다. 하지만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깨달음이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인 사성제(四聖諦)로써 모든 고통을 벗어나는 처방전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는 말처럼 순간 방심하면 어디로 틜지 모릅니다. 그러하기에 수행자는 새벽에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혹시 악몽에 시달리거나 깊은 잠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면 마치 말이 남의 당근밭을 망쳐버리는 것과 같으니 바로 채찍을 쳐서 여실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에 모든 존재는 변한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