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리킬 때 자주 인용되는 용어가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다.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로,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치킨)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에는 둘 다 목숨을 잃고 만다. 끝없는 대결의 결과는 승자 없는 패배만 있을 뿐이라는 교훈도 포함된다.

본의든 타의든 선행학습의 치킨 게임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매달려 있다. 교육의 수월성이나 경쟁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학생들이 학원에서 미적분을 미리 배워야만 안심이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행교육을 하지 않으면 자녀에게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불안감, 다시 말해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선행학습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학생들을 과도한 선행 학습의 치킨 레이스에 올려놓은 것이다.

실제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박홍근 국회의원이 발표한 서울 주요 13개 대학의 ‘2014년 자연계 논술 문제 분석 결과’를 보면 현실이 십분 이해된다. 고교 교육과정에서는 난제이지만 대학 수준에서는 쉽게 풀리는 문제가 여전하였다. 논술 문제가 대학 교재 ‘정수론’에서 인용되어 출제되고, 대학 해석학개론에 나오는 함수열 기호 fk를 활용하기도 하였다. 전년도와 비교한 대학 과정 출제율도 6개 대학은 증가, 6개 대학은 하락, 1개 대학은 유지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달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령 마련 절차에 들어간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을 두고 논란이 많다. 학원 등 사교육 업체를 제외하고 공교육만을 대상으로 하여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부터, 국어 등 일부 과목은 선행학습의 기준을 정하기가 모호하다는 점, 대학의 서열화 속에서 입시 위주로 진행되는 현장의 실정을 도외시한 정책이란 비판도 많다.

일례로 공교육 현장에서 2학년 말까지 3년 과정을 정리하고 3학년 때는 수능 시험일까지 EBS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을 해왔던 관행이 앞으로는 어려워질 수 있다. 각 시도 교육청이 1년에 서너 차례 실시하는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수능)도 마찬가지다. 필수로 지정된 한국사와 같은 경우 학교마다 배우는 학년이 달라 출제 범위를 맞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시행령에서 고3을 예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마지막에 가서 통로를 열어주는 것은 그저 미봉책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EBS 문제 풀이가 고교 교육의 본질인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입 준비를 위한 모의 평가가 학교 교육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결국 입시에 공교육이 매달려 사설 학원과의 경쟁 구도를 지속하는 한 선행교육의 치킨 레이스로부터 공교육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공교육 현장에서부터 레이스를 중단하겠다는 것을 두고, 공교육만 선행학습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대학이 서열화 된 상황에서 대입을 향한 목표가 중요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법 입안은 선행학습을 해야만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을 불식하는 데 본연의 취지가 있다. 타의에 의한 선행학습 유발 요인을 줄임으로써 학생들을 자유롭게 하고, 교육의 본질적 측면을 공교육에서부터 찾아가려는 디딤돌인 셈이다.

이미 창의적 융합, 서술형 및 창의사고력 평가의 확대 등 각종 교육 정책은 진도 우선의 선행보다는 학습한 개념을 얼마나 깊이 있게 다룰 수 있고 다양하게 창의적으로 확장해 나가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응용 및 사고력 확장을 위한 선행학습은 오히려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선행학습으로 인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오히려 잃어가는 학생의 입장에서 치킨 게임 결과를 생각한다면,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지혜 도출도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