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로 중국의 승객 수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한 텔레비전 아나운서가 한국인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가 국내외에서 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설사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공적 채널에서 표현하면 아니 된다는 것은 정당한 요구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느끼지도 않는 것을 거짓으로 꾸미라는 것인가? 즉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오늘 같이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는 세상에서 이러한 의문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보편윤리를 내면화한 사람이라면, 그 언행에서 위선·진선의 문제가 일어나지도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아나운서까지도 도를 닦은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공적 차원은 언행의 보편적 규범을 요구한다. 사람의 삶에는 사사로움을 넘어가는 세계가 있다.

아시아나 사고에서 텔레비전의 앵커에게 요구된 보편주의는 모든 공적 자리에서 두루 요구되는 규범이다. 이러한 요구가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곳이 정치이다. 이 요구는 텔레비전 아나운서나 성인(聖人)의 경우보다 조금 더 좁은 것이기도 하고 조금 더 강한 것이기도 한다. 더 좁다는 것은 적어도 오늘의 시대에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관심과 걱정의 범위는 국민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하다는 것은 실천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좁아지는 범위는 규범상의 모순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큰 의미에서의 정치인의 쉽지 않은 과제이다. 아마 위에서 말한 방송 실수도 이러한 어려움에 관계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나 관직의 높은 자리처럼 괴로운 일자리가 없을 것이다. 수해가 나거나 다리가 무너지거나 큰 부정이 발견되거나, 보통 시민들은, 이것이 특히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면, 유감스러운 느낌이나 인생에 대해서 우울한 느낌을 갖는 정도로도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러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가고 대책을 세우고 해야 한다. 직장을 얻지 못하는 사람, 병이 나도 병을 고쳐볼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정치하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만도 한 짐이다. 그러나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사람들을 설득하여 나라의 지도자가 되게 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했다. 간단한 의미에서 이타적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만은 아니다. 플라톤의 세계에서는 지도자가 될만한 사람은 이미 진선미의 추구에 정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세속적인 일로 바꾸라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세속과 초월의 모순을 아우르는 차원에 있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삶을 살려는 뜻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오늘날의 정치 현장에서, 잠꼬대 같은 소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는 권력과 이권의 쟁탈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인이 높임을 받는 것은 반드시 이러한 싸움의 챔피언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에 종사하다 보면,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살겠다는 뜻이 절로 생기는 수도 있다. 현실 정치인의 실상이 어쨌든 정치의 공적 공간에는 어떤 성스러움, 위엄이 있게 되어 있다. 옛날 나이 어린 임금도 임금으로 대한 것은 반드시 사람을 두고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의 공적 공간에 높여야 하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현장을 보면 정치 공간의 위엄은 완전히 사라진 적으로 보인다. (세속적인 위엄을 위한 장비가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정치는 막말을 쏟아 성깔을 보이고 투사의 위력을 자랑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삶에 대한 느낌이 없이 정치에 종사할 보람이 있는 것일까? 더 중요한 의문은, 공적 공간의 위엄 그리고 그 엄숙함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져도 사회가 온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