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에서 때로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없지 않다. 참석했던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화제는 어느 누구가 얼마나 유명한 인사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나온 잊히지 않는 말은 “세상에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가 하는 것일 뿐이다. 유명한 수학자라도 참으로 그 유명함이 의미가 있는 것은 수학의 경계 안에서이다.
크고 작은 가족들 사이에서는 가족이 된 사람은 누구나 유명하다. 또는 유명무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관습에서는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이름을 의식하고 사용하는 것 자체가 꺼림칙한 일이어서 이름의 사용을 기피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다.
동네에는 쌀가게가 있고, 채소가게가 있고, 이발소가 있고, 문방구가 있고, 서로 안면이 있는 가게들이 있다. 동네가 커지면, 가게들 가운데 조금 더 유명한 가게가 있고, 그렇지 못한 가게가 생긴다. 병이 나면, 유명한 의원이 누구지 하고 묻게 된다. 물론 이것은 주민보다는 낯선 곳에서 그 고장을 찾은 사람이 묻게 되는 질문이다.
세상이 커지고, 추상화됨에 따라 삶의 실질적인 내용에 관계가 없는 이름들이 중요해진다. 삶의 지도가 불분명한 공간에서, 언제 누가 유용할지 모르니 유명한 이름을 알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이름은 무조건 나고 볼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다.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로 ‘당신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라는 것이 있었다. 모델이 될 생각으로 뉴욕에 왔다가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헤매던 여주인공은 어떻게든지 이름을 알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여성은 시내 여러 군데의 광고판을 사서, 아무 설명 없이 자기 이름을 크게 적어 놓는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인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로부터 삶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유명하다고 들을 때, 사람들은 “무엇으로 유명하지요?”하고 묻는다. 이에 대한 우스개 대답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지요”이다. 위의 할리우드 영화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싸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고, 나라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지난 13일에는 우리에게도 더러는 알려져 있는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유명가사 작곡가 전시관’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그것도 본인들에게, 또 그 자체로 중요한 사건이겠지만, 국외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세르즈 아로쉬와 데이비드 J. 와인랜드가 양자물리학 분야의 새로운 실험으로 작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중요한 업적일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보통사람에게는 그 업적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바 있던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자 칙센티미하이이 교수는 대부분의 수상자가 상보다 연구 자체를 중요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그들에게 유명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얼마 전 나는 입시 준비생은 기필코 서울대를 지망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유명하다는 것 이외에 지망자는 서울대에 대하여 무엇을 아는가? 오래 전 나는 한 미국인 친구가 아들을 데리고, 여름방학 동안 이런저런 유명 무명의 대학을 순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본인은 예일 대학을 나왔고, 아들도 거기에 지원서를 낼 생각이었지만, 우선 아들로 하여금 대학의 환경 등이 마음에 드는가, 어떠한가를 스스로 판단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정보가 날로 확대되어 가는 세상이다. 내가 접하는 정보들이 나의 삶에 얼마나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허명과 실질 정치의 경우, 구호와 현실의 차이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장미는 그 이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나의 삶은 넓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가져야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오늘의 명품 시장은 이 한계를 생각해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정한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가늠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문제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가 하는 것일 뿐이다. 유명한 수학자라도 참으로 그 유명함이 의미가 있는 것은 수학의 경계 안에서이다.
크고 작은 가족들 사이에서는 가족이 된 사람은 누구나 유명하다. 또는 유명무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관습에서는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이름을 의식하고 사용하는 것 자체가 꺼림칙한 일이어서 이름의 사용을 기피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다.
세상이 커지고, 추상화됨에 따라 삶의 실질적인 내용에 관계가 없는 이름들이 중요해진다. 삶의 지도가 불분명한 공간에서, 언제 누가 유용할지 모르니 유명한 이름을 알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이름은 무조건 나고 볼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다.
이 여성은 시내 여러 군데의 광고판을 사서, 아무 설명 없이 자기 이름을 크게 적어 놓는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인가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고, 그로부터 삶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유명하다고 들을 때, 사람들은 “무엇으로 유명하지요?”하고 묻는다. 이에 대한 우스개 대답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하지요”이다. 위의 할리우드 영화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싸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축하할만한 일이고, 나라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지난 13일에는 우리에게도 더러는 알려져 있는 엘튼 존과 버니 토핀이 ‘유명가사 작곡가 전시관’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그것도 본인들에게, 또 그 자체로 중요한 사건이겠지만, 국외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세르즈 아로쉬와 데이비드 J. 와인랜드가 양자물리학 분야의 새로운 실험으로 작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중요한 업적일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보통사람에게는 그 업적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한 바 있던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자 칙센티미하이이 교수는 대부분의 수상자가 상보다 연구 자체를 중요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그들에게 유명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얼마 전 나는 입시 준비생은 기필코 서울대를 지망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유명하다는 것 이외에 지망자는 서울대에 대하여 무엇을 아는가? 오래 전 나는 한 미국인 친구가 아들을 데리고, 여름방학 동안 이런저런 유명 무명의 대학을 순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본인은 예일 대학을 나왔고, 아들도 거기에 지원서를 낼 생각이었지만, 우선 아들로 하여금 대학의 환경 등이 마음에 드는가, 어떠한가를 스스로 판단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정보가 날로 확대되어 가는 세상이다. 내가 접하는 정보들이 나의 삶에 얼마나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허명과 실질 정치의 경우, 구호와 현실의 차이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장미는 그 이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나의 삶은 넓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가져야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오늘의 명품 시장은 이 한계를 생각해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정한 나의 삶,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가늠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