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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물 수집가의 죽음
윤 영 기
문화부 차장
2013년 02월 05일(화) 00:00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 사기극이냐” 지난 2007년 9월1일자 광주일보 1면에 실린 머리 기사다.

기사의 주인공은 김희용(당시 59·광주시 북구 )씨였다. 그는 16년 동안 수집했다는 흑피옥(黑皮玉) 조각상 500여점을 광주일보에 공개했다. 표면이 검은 옥(玉)으로 만들어진 유물들은 남녀 성기과장, 동물형상, 신(神), 인간과 동물의 결합체 등이었다. 그 정교함과 세련미에는 유물감정에 동행한 고고학자도 ‘만약 진품이라면…’하고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외면하지만 역사에 등장하지 않은 초고대 문명의 유물이다. 중국 네이멍구 우란차푸시에 묻혀있는 유적지와 유물을 필사적으로 추적했다”고 절규했다.

그가 지난달 25일 유물·유적의 실재와 역사적 가치를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식 인정받지 못한 채 영면했다. 7년여 동안 중국 당국에 흑피옥 발굴을 촉구해온 그의 족적은 가볍지 않다.

지난 2008년 중국 당국은 김씨의 지인에게 보낸 국가 문물국(우리나라의 문화재청에 해당)명의의 공문에서 흑피옥 출토지점을 알려준다면 현장을 답사할 의향이 있다고 발굴의지를 표명했다. 국가문물국이 주도해 발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씨에게는 현장 참여를 허락하지 않고 발굴 진행상황도 알려주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기초과학 공동기기원이 흑피옥 도료의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구석기시대 후기인 1만4300년 전(± 6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을 얻어내 김씨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국내 주류학계는 김씨의 주장을 외면했다. 이제 그가 떠난 마당에 그의 죽음을 남의 나라에 있는 신문명의 존재를 주장해온 한 괴짜의 명운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의 삶은 우리 역사학계가 받아들여야 할 경종에 가깝다. 그의 삶이 역사와 유물, 유적을 엄숙하게 대해야할 학계의 책무를 웅변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측이 유물의 존재를 시인한 상황에서 더 이상 흑피옥의 진위 여부 등을 놓고 벌이는 논쟁도 무의미하다. 김씨의 주장대로 역사에 등장한 적이 없는 신문명이라면 ‘남의 나라 것’이라고 치부하기보다, 대한민국 사람이 연고권을 갖고 있는 유물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고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뇌리에 맴돈다. “중국당국이 유적과 유물 모든 것을 갖되, 그 발견자는 대한민국 사람이라고만 해주면 여한이 없어.”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