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축제’라거나, ‘축제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축제일까. 축제는 아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즐기는 구경꾼이라면 모를까,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작용을 감안하면 축제처럼 치르기는 어렵다. 선거는 네편 내편의 싸움이다.

5년 전 출간돼 인기를 모왔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면장선거’를 보면 실감이 난다. 여기서 선거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인구 2500명에 불과한 작은 섬에서는 4년에 한번 치러지는 면장선거로 온 동네가 들썩인다. 주민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진영과 어업으로 먹고 사는 그룹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갈려 선거철만 되면 앙숙처럼 싸운다.

선거에 질 경우 그들의 신세는 급전직하 나락으로 떨어진다. 간부가 하루 아침에 청소과 평직원으로 강등되고, 초등학교 배식직원으로 밀려난다. 이 때문에 진편은 4년동안 복수의 칼을 갈아 선거전에 나선다. 모든 주민이 투사가 되어 선거운동을 하고, 투표를 한다. 한표가 아쉬운 지경이라 치매 노인까지 동원해야 한다.

이 섬의 주민들이 목을 매는 투표, 즉 참정권이 민초들 손에 주어진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피지배자들에게 정치적 의사를 묻고 동의를 얻어내 국가를 통치하는 형태는 17세기 영국혁명과 18세기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민중들의 피를 자양분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재산이 있는 남성만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등 제한적이었다.

이후 19세기, 20세기까지도 투표권 쟁취를 위한 지속적이고 험난한 투쟁은 계속됐다. 결국 노동자, 농민, 여성, 노예, 흑인 등도 이른바 ‘보통·평등선거’라는 권리를 얻어 똑같이 인간 대접받고 살게 된지는 채 100년도 안된다.

한국도 80년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이 밑거름이 됐고, 87년 ‘6월항쟁’과 같은 민주화시위가 직접적인 계기가 돼 대통령 직선의 권리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무릎을 꿇린 것은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절규였다.

18대 대통령 선거, 이제 여야 주자가 맞붙는 1대1 전선이 형성됐고, 두 후보간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유권자들도 나설 때가 됐다. 정권 재창출을 원하는 쪽인지, 아니면 정권교체를 갈구하는 쪽인지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낱 면장선거가 그렇게 치열한데 대통령 선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데, 어느 한쪽 전선에 참여해야 한다. 수세기 걸쳐 민중의 투쟁과 피로 얻을 만큼 투표권은 귀중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최상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 그들이 하는 선거도, 그들만을 위한 선거도 아니다. 그 둘 중 하나는 선택될 뿐이다. 국민, 즉 나를 위한 선거이며 대통령은 나의 의사표시로 내가 정한다. 내가 정치의 주체이고 권력은 나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 대통령은 내 운명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투표를 해야 할 이유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상대가 벅차, 질 것 같고 한표의 영향력이 떨어질때 기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무엇보다 긴장감이 넘친다. 단일화 후 여론조사마다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지지율에서 미세하게 앞서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열을 점치기 어려울 정도의 살얼음 승부다.

결국 승패는 1% 안팎의 표차이로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니 유권자의 한표 한표는 더욱 소중해졌고 이 정도면 투표장에 갈 명분은 충분하다.

물론 대통령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원한 대통령, 그것은 나의 현실을 타개할 전제조건은 된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그래도 기권의 무력감을 벗어던지기 어려운 유권자가 있다면 시 한편을 인용한다. 안철수가 최근 한 토론회에서 낭송한 조동화 시의 일부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편집부국장〉 ki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