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풍속 중에 이사만큼이나 다양한 것도 드물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전학하기 좋은 방학이나 직장 일에 지장 없는 날을 택하지만 그 중에서도 ‘손’ 없는 날을 잡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네 심정이다. ‘손’이란 본래 손님이나 귀신을 가리키는 말로, 궁핍한 집안에 손님이 찾아오면 대접하기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다는 뜻과 귀신이 활동하는 날에 이사를 하면 해코지를 당하기 십상이므로 그날을 피하자는 의미다. 동서남북에는 귀신이 머무는 날짜가 따로 있어 각기 그 방향의 날짜를 피하면서 이사를 하는데, 음력 9, 10, 19, 20, 29, 30일이 해당되어 지금도 이삿날로는 가장 붐비는 날이다.

제주에서는 유달리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까지의 ‘신구간’에만 이사가 밀리는데 이 기간은 옥황상제가 일 년 중 한 번 세상사를 보고받고 신관과 구관을 교체하는 시기로 이때 집을 고치거나 이사를 해야 화를 면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영조 때 실학자인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서는 주거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지리·생리·인심·산수를 들고, 산 좋고 물 좋고 토질이 좋으며, 햇빛이 잘 들며 음습하지 않은 곳에 집을 지으면 재산이 늘고 자손 대대로 번성할 것이라 하였다. 이사 갈 집의 방향에서도 ‘남향 집에 동향 대문’을 제일로 꼽았다. 남향은 음양오행설에서 양기가 가장 충천한 쪽이고, 햇볕이 잘 들어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기 때문이다. 동향 대문을 바라게 된 것도 동쪽은 양의 방향이므로 풍요다산(豊饒多産)과 다복(多福)이 들어오는 쪽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사 갈 때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꼭 살려서 가져가야 했는데 불을 재산신으로 여겨 불씨가 꺼지면 집안이 망하는 것으로 여겼고, 바가지에 물을 떠서 고추·숯·소금을 넣고 이사 온 집의 부엌 바닥에다 두었는데, 이것 또한 부정을 가시게 하고, 잡귀를 몰아내려는 의도에서 생긴 것이다. 일이십 년 전만 해도 이사한 집을 방문할 때 사가는 선물이 성냥이나 양초였던 것은, 모든 일이 불꽃처럼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였다. 또 가정생활의 필수품인 비누나 화학 세제·치약 등이 집들이 세트에 빠지지 않는 것은 새로 이사 간 집의 부정을 없앤다는 민간신앙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좁은 땅에서 대대로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배불리 먹고 양식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소망이었고,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목적도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농사가 잘되는 곳으로 옮겨 사는 것이었다.

지난 월요일엔 전남농협지역본부가 광주시대를 마감하고 남악신도시에 둥지를 틀었단다.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농축산물을 잘 팔아주는 판매농협으로 변화를 선언한 전남농협과 남악의 새로운 집터가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하고, 풍요다산과 다복의 발원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옥영석 농협중앙회 농산물도매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