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처럼 설 명절 민심이 심란했던 적이 있었던가.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에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나마 마음을 달래줄 고향방문도 쉽지 않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50년만에 최악의 구제역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며 각국의 검역당국에 경계령을 내리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심각한 구제역 파동 때문이다.

구제역 발생 2개월만에 전체 사육가축의 22%에 해당하는 310여만 마리의 소, 돼지가 살처분됐으며, 벌써 2조원이 넘는 정부재정이 들어갈 판인데, 더 큰 걱정은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국가적인 비상상황이다.

1, 2차 백신접종에 국내 최고수준의 철통 같은 방역시스템을 가동했던 국립축산과학원조차 구제역에 구멍이 뚫리는 판에 그 어디인들 안전한 곳이 존재할 수 있을까.

AI로 인해 3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된 전남이 구제역피해만은 아직 없다 하여 다행이라고는 하나 언제까지 안전할지 누가 알 것인가? 어서 제발 이 재앙이 끝나기만을 빌어볼 뿐이다.

도대체, 처음 겪는 일도 아닐진대 이번에는 어찌하여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도록 무기력했던 것일까. 김대중 정부 때 ‘방역도 국방이다’며 군 병력까지 신속하게 투입하여 총력전을 편 결과 조기진압에 성공했던 경험을 보더라도 초동방역시스템만 확실하게 가동되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전국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인데, 이 나라 정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전염병은 초기대응이 생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구제역 발생 당시 전쟁불사를 외치면서 서해군사훈련에 치중한 탓에 초기대응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고, 초기대응에 실패한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원망스러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애지중지 기르던 가축을 생매장 해야했던 농민들의 절망과 한숨 앞에 대통령과 관련 장관들이 나서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다’, ‘보상금 타내려 구제역 방역에 나서지 않는다’ 등 방역실패 책임을 농민들에게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구제역은 농민들 개개인이나 지자체 수준에서 수습할 수 있는 전염병이 아니다. 국가차원의 총력대처가 없으면 막을 수 없는 제1종 법정전염병이라 한다.

더구나 축산업이 갈수록 밀식 사육, 기업화, 세계화되면서 국가적 방제시스템은 이미 국가안보차원에서도 중대한 사안이 된 마당에 ‘농민 탓’이라니 정신나간 소리다.

농민들은 지금도 방역현장에선 밤잠을 설치며 구제역을 막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부처를 뛰어넘어 범 정부차원의 비상총력대응도 부족할 판에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매뉴얼 잘못’으로 책임을 돌리거나 그 의도부터가 불순한 개헌 모의를 할 때가 아닌 것이다.

정부는 재앙을 막지 못한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농심을 달래고 구제역 진압에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가전염병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차 침출수 오염방지, 구제역 확산 방지대책 등 긴급조치와 축산농가의 피해보상과 축산업 보장을 위한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재앙을 초래한 이번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비롯한 철저한 검증과 관련 당사자들의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류봉식 광주전남진보연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