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박물관 천국이다. 제주의 어느 곳을 가던지 특색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만나게 된다. 제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연사 박물관에서부터 동심을 설레게 하는 인형박물관 등 줄잡아 90곳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서귀포 중앙로에 위치한 이중섭 미술관은 제주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6·25 동란기인 1951년 삶과 예술의 자유를 찾아 제주도로 남하해 1년 간 머물렀던 이중섭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제주시가 지난 2002년 세웠다. 이방인으로서 서귀포와 인연을 맺은 화가의 흔적을 간직한 미술관은 매년 전국에서 7만여 명이 다녀간다. .

신정연휴인 지난 2일 찾은 이중섭 미술관은 여전히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이날 전시장에는 등산복 차림의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광주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었다.

이튿날 찾아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 절반 이상이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었다. 사실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의 갤러리는 일반인들이 쉽게 찾기 힘든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사진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나 그의 드라마틱한 삶에 매료된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김영갑이 루게릭병과 싸우면서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에는 그의 ‘분신’들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이날 등산복 차림의 관람객에게선 ‘마니아 미술관’이라는 면모를 찾기 힘들었다. 물론 카메라를 어깨에 멘 사람들이 많았지만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의 등산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렇다면 이들 미술관에 ‘갑자기’ 몰려든 등산객들은 누구일까? 바로 올레꾼들이다. 제주 올레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올레코스에 포함된 이들 미술관이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중섭미술관은 지난해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서귀포시가 지난해 집계한 결과 방문객 수는 9만512명으로 전년 동기 7만1174명에 비해 27.2%가 늘어났다. 올레꾼들이 올레길 코스에 들어 있는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감상한 덕분이다.

이들 미술관의 ‘올레특수’를 보면서 문득 무등산 길목에 위치한 한 미술관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중순 무등현대미술관(광주시 동구 운림동)은 ‘산에만 가십니까?’라는 빨간색 현수막을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등산객들이 지나가는 ‘목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전시회를 기획해도 미술관을 찾는 등산복 차림의 관람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언젠가는 미술관에 들러주겠지’하며 3년을 기다렸건만 달라지지 않자 등산객들의 무관심을 꼬집는 현수막을 내걸게 된 것이다. 이곳 뿐만이 아니다. 무등산 길목엔 의재미술관, 우제길 미술관 등 문화명소들이 여럿 있지만 이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등산객은 많지 않다.

올해는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는 것 만큼 전시장을 찾아 ‘마음의 건강’도 지키는 등산객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산에만 가십니까?’라는 현수막이 또 다시 광주에 내걸려서야 되겠는가.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