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가 지고 난 자리에 국화꽃이 산을 이뤘다. 한숨과 흐느낌에 하늘도 숨을 죽이고 애도의 물결은 흐르는 강이 되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이 나라와 국민의 앞날을 위해 그토록 걱정해온 이가 또 누가 있었던가! 이제 그가 떠난 그 큰 빈자리에는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며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는 유훈 만이 남았다.

평소 그가 무엇보다 중시해 온 인권에 관하여도 재임 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하고 여성 인권문제를 비롯한 전반적 인권수준 신장에 주력해 온 사실은 모두가 잘 아는 일이다.

장애인문제와 관련해서도 근본적 차원의 인권문제로서 이해하고 국가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다운 접근인식과 선 의식은 이후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오랜 바램이었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이끌어낸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뿐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인 199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시작으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을 제정하였고, ‘통합방송법’ 제정으로 자막방송과 화면해설방송을 하도록 하여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의 방송시청을 가능하게 했다. 앞서 1998년 ‘수화통역센터’의 설치와 2001년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 제정과 ‘정보화교육’의 실시, 수준은 미약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립으로 취약계층의 기초생계를 지원하고자 했던 일련의 노력 등 관련 정책의 정비와 보완을 통해 장애인과 소외계층의 복지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흔적들이 역력하다.

당시의 상황을 반추하면 국가적으로 IMF라는 힘겨운 경제상황에 있었다는 점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생산적 복지’를 지향하며 소외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고자 했던 국민의 정부와 그 이념,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참여정부를 지나 우리는 지금 ‘실용주의’와 ‘능동적 복지’를 표방하는 새 정부를 맞고 있다.

시작부터 새 정부는 종부세 폐지 등 부자 감세를 서둘렀고, 인권의 최후 보루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축소와 함께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언론관계법’을 국회법과 의회정신을 무시한 채 강행 처리했다. 더욱이 소득이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 도입키로 한 ‘장애인연금법’ 제정에 있어, 직접당사자의 의견 수렴이나 명확한 산출근거조차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졸속 처리하려 하는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조차 서질 않는다.

MB정부가 표방하는 ‘능동적 복지’의 실체가 그러한 방식에 의한 것이라면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수십 가지의 국정과제와 목표가 무슨 소용이며 누가 신뢰를 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신 그 큰 빈자리에 인동초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차별과 억압, 박해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굵은 눈물을 떨구던 두 분의 큰 바위 얼굴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인동초 씨앗이 움터 가지를 뻗고 우거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지켜내는 강한 동력이 되도록 키워가야만 한다. 그가 떠나며 남긴 한마디처럼 현재와 미래 대한민국의 희망은 이제 인동초의 정신, 행동하는 양심만이 해법인 셈이다.

/정병문 (사)광주장애인총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