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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장소성·주변 경관 고려…공공건축 디자인 품격 높여
도시 디자인, 행복한 도시 풍경의 완성 <2> 경북 영주
10만명 인구 도농복합도시
신도시 조성으로 구도심 슬럼화
전국 최초 총괄건축가제도 도입
국토부 지원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공공건축 20개 사업 860억 예산 확보
이낙연 총리 선진시찰 1만5000명 다녀가
2019년 10월 10일(목) 04:50
경북 영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부석사 무량수전이었다. 최순우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의 영향이었다.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경북 내륙’이라는, 거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곳이라 쉽게 방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수근 프리뷰’ 상 등을 수상한 영주노인복지관


인구 10만의 이 작은 도시에 몇년 전부터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을 찾는 관광객이 아닌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건 흥미롭다. 쇠락해가던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건 ‘공공 건물’이었고, 영주의 공공건물 정책을 연구하고 건물을 둘러보기 위해 건축가, 공무원, 건축 전공 학생 등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디자인이 아름다운 도시 영주-공공건축물로 도시를 변화시키다’가 영주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다. 전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총괄건축가제(공공건축가)를 시행하며 도시 디자인을 체계화시킨 이곳엔 1만5000여명이 다녀갔고 지난 4월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우수 사례를 살피러 방문하기도 했다. 영주시는 공공건축 선도 도시 관련 20개 사업 860억 예산을 확보했고 대한민국경관대상 등 수상 실적도 많다.

영주는 1970년대만 해도 인구가 18만명 정도의 도농복합도시로 교통의 요지였다. 조국 법무부장관 부인이 재직중인 학교로 유명해진 동양대가 바로 이곳에 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산업쇠퇴와 가흥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구도심은 슬럼화가 심각해지는 등 급격히 쇠락해졌고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긴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였다. 또 전형적인 초고령 도시이기도 하다.

영주시 역시 기존의 공공 건축 관련 사업들은 행정 체계에 따라 각 부서에서 상호 연계 없이 독립적으로 추진, 기능적으로 연관된 서비스를 제공이 어려워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했고 예산 낭비도 많았다.

영주가 건축도시로 이름을 얻게 된 출발은 지난 2008년이다. 초기 단계에는 국토교통부 지원을 받아 시범사업으로 추진됐다. 당시 장소 가치 향상을 위한 공공건축 통합화 방안 연구와 공공건축을 통한 영주시 도심 재생 방안이 연구됐고 마스터 플랜 수립 후 2009년 전국 최초로 공공 건축가를 위촉했다. 이어 디자인 관리를 위한 운영 규정 제정 및 디자인 관리단을 만들고 2015년 영주시 ‘도시건축관리단’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각종 공공건축 및 디자인 관련 사업을 기획·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 개발 사업, 도시 재생 사업, 일반 농산어촌개발사업 등이 포함된다.

재생사업을 통해 주민방송국, 어린이극장 등이 들어선 후생시장.


시는 동사무소, 보건소, 수영장 등 지역민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공간들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유사한 박스형 공공 건축물을 지양했다. 예쁘고 화려한 디자인보다, 역사성과 장소성, 주변 지역 경관을 고려한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등 공공건축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영주 시청 도시경관팀 정신구씨와 둘러본 공공 건물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인상적이었다.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읍사무소에 들어섰을 때 관공서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우리 집에서 편하게 민원 서비스를 받는 기분이었다. 민원실 등 어느 방향에서나 건물로 들어갈 수 있고 남원천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테크 역시 외부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전망테크에서는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시청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인복지회관 역시 인기가 많은 공간이다. 밖으로 창을 많이 내 다양한 곳에서 ‘빛’이 들어오는 게 눈에 띈다. 특히 광장 인근에 자리한 커피숍에서는 손자·손녀를 데려온 노인들이 아이들을 지켜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정신구씨는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이 내가 대접받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하신다”며 “설계자가 노인을 부양해야할 사람들로 여기는 게 아니라, 제 2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이들로 여기고 건물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노인복지관은 김수근 프리뷰 상,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바로 이웃한 장애인복지관(2018 대한민국공공건축상 최우수상 등 수상)은 건물 안 층고가 낮은 게 조금 답답해 보이기는 하지만,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공원과 바로 연계돼 있어 도로에서 접근성도 좋았다. 두 건물은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긴밀하게 협력해 영주시민 전체가 만나는 곳으로 조성했고 광장을 넓게 뒀다.

조제보건진료소는 마을의 진입마당이자 사랑채 역할을 한다. 진료 뿐 만 아니라 밭일 나가는 이들의 택배도 받아준다. 공설운동장 인근에 새로 문을 연 시립수영장은 1층에 수영풀을 배치하는 등 열린 공간이 눈에 띄며 바로 옆의 영주대한복싱 전용훈련장과 체육관은 지형에 순응한 건물이 인상적이다.

재생사업을 통해 주민방송국, 어린이극장 등이 들어선 후생시장.


영주역전의 후생시장, 중앙시장 등 재생사업 공간들도 인상적이었다. 후생시장은 1950년대 지어진 근대 목조 건물로 제법 큰 고추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공간인데 2015년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 일환으로 방송국, 게스트하우스, 어린이극장 등으로 변신했고 지난해 공공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바로 이웃한 중앙시장은 중앙에 넓은 광장을 조성한 게 눈에 띈다.

시민들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이끌어냈다. 영주청소년문화공간은 영주수도사업소 부속 창고를 리모델링했다. 건물 앞쪽에 주차장쪽으로 열리는 파사드를 만들어 관객석으로 활용하면서 층고도 낮고 평범한 2층짜리 건물을 멋지게 변신시켰다. 발주는 시가, 기획은 영주 시민단체 ‘이웃을 사랑하는 모임’이 진행, 공공기관과 시민단체가 결합한 사례로 꼽힌다.

건물 설계·공모와 관련해서는 변화도 모색했다. 문예회관의 경우 1단계 아이디어 심사를 진행하고 여기서 뽑히면 2단계 심사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공모 방식 변경 후 20개에서 이후 80개의 아이디어 들어왔다. 젊은 건축가들이나 소규모 업체들도 참여할 수 있어서였다.

영주시의 일관성 있는 공공 건물 관련 정책에서 전체 부서의 사업을 파악해 자문을 하고 진행하는 총괄건축가의 존재는 ‘만능키’는 아니지만 큰 역할을 했다. 또 영주시의 비전에 동조한 좋은 건축가와의 만남이 큰 힘이 됐다. 디자인 감리제도를 도입해 설계 그대로 구현하도록 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은 것도 주효했다. 지자체가 발주한 건물들이 조감도와 다르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주에서는 설계자의 의도가 그대로 구현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좋은 건축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가장 중요한 게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과 실행력 확보다. 초창기 잘하다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씨는 “민간인 전문가와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순차적으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비슷하게 주목받았지만 정기용 건축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흐지부지 되어버린 전북 무주 사례가 떠올랐다.

현재 영주는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2019도시건축비엔날레에 초대돼 소개되고 있다. 돌아오는 길, ‘영주시 공공건축 이야기’라는 작은 책자를 받았는데 작은 도시가 일궈낸 작은 기적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경북 영주=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